혼자 만들어 썼을 배낭, 1897명 투자 받아 인기 제품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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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키우는 크라우드펀딩]<下>청년 창업가 3人의 대박 꿈

18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회의실에서 ‘청년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상훈 연성욱 강동구 
씨(왼쪽부터)가 자신들이 개발한 제품을 보여 주고 있다. 이들은 크라우드 펀딩을 받아서 제품 양산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18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회의실에서 ‘청년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상훈 연성욱 강동구 씨(왼쪽부터)가 자신들이 개발한 제품을 보여 주고 있다. 이들은 크라우드 펀딩을 받아서 제품 양산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동영상 속 한 남성이 백팩(배낭)을 집어 들고 짐을 싸기 시작한다. 그가 백팩 내부의 공간 분리대를 떼어 내 구부린 뒤 다른 위치에 붙이자 카메라, 삼각대, 여벌 옷 등이 각각의 틈에 딱딱 맞는다. 백팩을 메고 여행에 나선 남성은 가슴 옆 배낭끈에 숨어 있던 공간에서 휴대전화와 카메라 등을 꺼낸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이 동영상과 간단한 제품 설명 사진이 올라오자 한 달 동안 1897명이 1억2265만 원을 투자했다. 제품을 만든 이상훈 씨(35)는 “크라우드 펀딩이 아니었다면 나 혼자 만들어 썼을 배낭인데 펀딩 덕분에 날개를 달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 “투자 유치, 판로 걱정 한꺼번에 날려”

지난해 11월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는 이 씨가 운영하는 회사를 포함해 총 20개 스타트업을 선정하고, 한 달 동안 ‘청년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달 25일 크라우드 펀딩 제도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우수 벤처기업 발굴을 위해 시범적으로 기획한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약 5400명이 총 3억7000만 원을 투자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다.

‘수납 최적화’ 백팩으로 1억 원 넘게 투자 받은 이 씨는 국내외 디자인 업계에서는 이미 이름이 알려진 산업 디자이너다. 2010년 조명등과 스피커, 휴대전화 충전기가 합쳐진 ‘도킹(docking) 스피커’를 내놨지만 당시 투자를 약속했던 미국 측 에인절 투자자와의 합의가 틀어져 제품화에 실패했다. 이후 부업으로 간간이 신제품을 만들어 온 그는 제품 생산에 필요한 돈이나 판로가 없어 사업을 진행할 엄두를 못 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도킹 스피커와 백팩이 크라우드 펀딩에서 연달아 히트를 치며 이 씨는 사업 밑천을 확실히 마련했다.

강동구 대표(36) 역시 6년째 이렇다 할 투자자 없이 홀로 개발만 해 오다 이번 펀딩 프로젝트을 통해 성공 기회를 잡았다. 그는 세계 최초로 줄넘기, 달리기, 훌라후프가 모두 가능한 스마트 운동 기기를 개발했다. 강 대표가 이 상품을 처음 구상한 건 2009년. 하지만 기술 개발을 돕겠다는 투자자를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투자회사를 찾아가도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다. 강 대표는 “제품을 포기할 수 없어 작은 유통회사를 운영하며 그 수익금으로 제품을 만들어 왔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펀딩에서 그의 제품이 세상에 알려지자 벌써부터 미국의 월마트나 한국의 하이마트 등 대형 유통 업체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 정부 “크라우드 펀딩 성공 위해 최선”

이번 ‘청년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에 투자한 사람들은 투자의 대가로 해당 기업의 제품을 받는다. 이른바 ‘보상형 펀딩’이다. 하지만 25일부터는 크라우드 펀딩 투자자가 투자 회사의 지분을 받는 ‘증권형 펀딩’도 가능해진다. 기업인과 투자자 모두 책임이 커지는 셈이다. 증권형 펀딩에 참여하기로 한 이상훈 씨는 “투자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제품 판매 방식과 향후 개발 예정인 제품군 등을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모든 창업 기업들이 ‘증권형’ 방식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조종 가능한 전기스케이트보드를 만든 연성욱 씨(28)는 “사업 초기부터 소액 주주가 많아지면 향후 이들이 수익금을 회수할 때 분쟁이 생길 수 있고 제품 개발과 판매 전략에도 혼선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은 이런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비상장기업 주식이 거래되는 금융투자협회의 장외시장(K-OTC BB)을 통해 크라우드 펀딩 투자금을 사고팔 수 있도록 했다. 투자한 업체가 코스닥시장 등에 상장하지 않아도 투자자가 원할 경우 자금을 회수할 길이 열린 것이다. 또 우수 기업에 대해서는 자금 조성 단계부터 정부가 조성한 성장사다리펀드를 함께 투자해 펀딩의 ‘마중물’ 역할을 하도록 할 방침이다.

크라우드 펀딩 중개 업체인 와디즈의 최동철 이사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한 달 만에 2000만 달러를 투자받은 ‘페블 타임’(미국의 웨어러블 기기 제조 업체)처럼 국내에도 하루빨리 대표적인 성공 기업이 나와야 투자 붐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크라우드펀딩#투자#청년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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