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전자부품-헬스케어… ‘미래 먹거리’에 아낌없는 투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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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로 찾기 나선 대기업들]
위기 속에 빨라지는 산업재편

국가 산업 지형도가 급격히 바뀌고 있다.

석유화학, 조선, 철강 등 과거의 성장엔진이 일제히 동력을 잃어가는 가운데 헬스케어와 자동차 전자장치, 2차전지 등이 새로운 ‘국가대표 산업’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재계 1위 삼성을 비롯해 현대자동차, SK, LG 등 국내 대기업들은 기존 사업들을 과감히 정리하면서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한국 경제의 5년 뒤, 10년 뒤를 결정할 산업 재편 작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 체질 개선 나선 기업들

2013년 말부터 시작된 삼성그룹 사업 재편 작업의 큰 방향성은 ‘선택과 집중’이다. 내부 계열사 간 공통 사업부문을 합치는 한편 비주력 사업부문은 과감하게 매각했다. 한화 및 롯데그룹과의 빅딜을 통해 그룹 내 방산 및 화학사업부문을 모두 정리한 게 대표적이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1등이 아닌 사업은 모두 손을 뗀다’는 원칙 아래 필요 없는 사업은 모두 정리를 검토하는 한편 주력할 수 있는 신사업에는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1일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제3공장 기공식이 대표적인 장면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와 함께 자동차 전장(電裝) 사업을 주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달 초 발표한 조직개편에서 부품(DS)사업부문 산하에 ‘전장사업팀’을 신설했다. 삼성SDI도 지속적으로 쌓아온 2차전지 노하우를 살려 전기자동차 배터리 사업에 주력할 계획이다.

LG그룹도 구본준 부회장을 필두로 전장사업을 그룹의 새로운 돌파구로 키우고 있다. 2013년 LG전자에 VC사업본부를 신설한 LG그룹은 LG전자의 주도 아래 LG화학,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이 ‘팀 LG’로 협업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최근 제네시스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양적 성장’ 전략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했다. 중국 업체들의 급성장 속에 가격경쟁력으로는 더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SK그룹이 SK하이닉스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기로 하고, SK㈜가 바이오사업을 신성장동력 중 하나로 육성하는 것도 기존 ‘정유-통신’이라는 두 톱 체제로는 더이상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 산업 구조조정도 본격화

내년에 태동 50년을 맞는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저유가’ 덕분에 좋은 실적을 거두고 있음에도 위기감이 좀처럼 걷히지 않고 있다. 중국과 중동에 대규모 석유화학 플랜트가 속속 들어서고 있어 공급 과잉은 갈수록 심화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각 기업이 발 빠르게 산업 구조조정에 나선 배경이다.

롯데케미칼은 10월 삼성그룹으로부터 삼성SDI케미칼 부문과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을 모두 인수해 ‘제품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기본 범용 석유화학제품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한화의 경우 태양광 사업에 그룹의 미래를 걸고 있다. LG화학이 정보전자소재와 전지뿐만 아니라 동부팜한농 인수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화학업계의 움직임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우케미컬과 듀폰은 이달 11일(현지 시간) 합병을 결의하고 향후 종자와 농화학 등의 사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듀폰은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하던 기능성화학사업을 7월에 분사시킨 바 있다. 바이엘도 그룹 매출의 28%를 차지했던 소재과학사업을 9월에 분사하고 생명과학 분야에 전력투구하기로 했다. 임지수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생명과학사업은 화학사업과 기술 및 사업적 시너지가 있고, 기존 화학사업보다 안정적이면서도 수익성이 양호해 글로벌 화학회사들이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공업 분야에서는 두산인프라코어가 알짜 산업인 공작기계사업부문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두산그룹의 경우 중공업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한 지 10여 년 만에 다시 면세점 사업에 뛰어들었다. 기존 주력사업으로는 더는 버티기 힘들다는 경영진의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 성장엔진이 바뀐다

한국 경제 주력산업들의 위기 징후는 이미 수년 전부터 예상돼 왔다.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빠르게 좁혀지는 데다 일본이 ‘아베노믹스’를 앞세워 산업경쟁력 강화에 나서면서 이른바 ‘신(新)샌드위치론’ 우려가 커진 탓이다.

게다가 한국 주력산업은 고령화 징후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기준으로 철강 자동차 반도체 등이 국내 10대 수출상품이 된 지는 이미 38년이 됐다. 선박(29년)과 합성수지(20년) 석유제품(19년)도 주력 수출품목에서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이 업종들의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조사한 결과 2009년 8대 주력 업종(조선 건설 기계 철강 화학 자동차 정유 반도체)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6.9%였지만 올해 상반기(1∼6월)는 5.6%로 떨어졌다. 조선의 경우 같은 기간 8.2%에서 ―1.6%로 10%포인트 가까이 급락했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하는 동안 적절한 산업재편의 계기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말고는 사실상 없었다”며 “대외적 요인에 의해 빠른 속도로 대규모 산업 재편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세진 mint4a@donga.com·김지현·최예나 기자
#전자부품#헬스케어#미래먹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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