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청소부서 ‘숙박앱’ CEO로… 청년창업가의 성공스토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 오로지 ‘0’이라는 공평한 공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모든 것이 ‘0’이 아니라 누구는 ‘0’이고 누구는 ‘90’에서 시작한다는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내가 세상에 그릴 수 있는 그림 실력이 안타까운 지경이라는 자책밖에는 안 되는 것이다. ―‘리스타트’(이수진·클라우드나인·2015년) 》

남의 일기를 읽는 것은 꽤나 이상한 경험이다. 그것이 서랍 속에 숨겨져 있던 것이든 정제 과정을 거쳐 공개가 된 것이든 마찬가지다. 위에 쓰인 날짜, 정확히 그날 하루에 그 사람이 살았던 시간과 했던 생각이 박제돼 있기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몰아 쓴 자서전과는 다르다. 일기에서는 기억이 미화되지 않는다. 이수진 ‘야놀자’ 대표(37)의 기록에도 그날그날의 날짜가 적혀 있다. 어느 여름 새벽 5시 59분엔 “오늘 일을 마치고 조금 있으면 다시 일을 시작한다. 또 다른 하루의 경계에 서 있는 나는 설렌다”고 썼다. 또 어느 가을날 오후에는 “이 터널을 지나면 분명 사람들 살아가는 세상이 나올 것인데 터널은 길기만 하다”며 방황한다. 28세에 사장이 된 사람이 좋은 날 궂은 날에 느껴온 감정들이 그대로 스며 있다.

야놀자는 2005년 모텔 정보를 올리는 사이트로 시작해 10년 만에 연매출 350억 원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름 때문에 “야놀자 대표님 얘기 많이 들었는데 엄청 미인이시라면서요”라는 ‘아는 체’를 많이 당하지만 이 대표는 남자다.

책날개에도 써 있듯 네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떴다. 여섯 살에 어머니가 재가한 뒤 할머니 밑에서 농사를 지으며 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비로소 한글을 깨쳤다. 침대보를 빨리 가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다. 모텔 업계에서는 ‘베딩 잘한다’고 표현한다. 20대에 침대 정리하고 바닥 치우는 모텔 청소부를 했기 때문이다. 그가 열악했던 모텔 환경을 바꾸고 세련된 한국형 ‘중소형 숙박업소’를 세우려는 이유다.

그래서 이 대표가 적은 ‘공평한 공간’이라는 말을 곱씹게 된다. 자신이 왜 ‘0’에서 출발해야 했는지 수없이 생각해 봤을 사람이 쓴 표현이라는 점에서다. 어느 날 밤에 “나는 아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것이다”라고 쓰면서 그 순간에 그가 했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