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60세 정년제’가 감원 칼바람 몰고 온 기막힌 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9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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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월 300인 이상 사업장의 ‘정년 60세’ 의무화를 앞두고 민간기업과 금융권에 감원 칼바람이 불고 있다. 장기 불황과 실적 악화 여파로 10대 그룹 임원 1000여 명이 연말 임원인사에서 옷을 벗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상당수 대기업은 정년 연장 전에 50대 고참 부장들에게 퇴직을 종용하는 분위기다. 55세 이상 임직원에게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는 시중은행에선 특별퇴직금을 받고 떠난 ‘희망퇴직자’가 올해 4000여 명으로 전년(1576명)보다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감원 대상에서 20, 30대 직원도 예외가 아니다. 굴착기 생산업체인 두산인프라코어는 중국 건설시장 침체로 입사 1, 2년차 20대 직원까지 희망퇴직자에 포함시켰다가 물의를 빚었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1, 2년차 신입사원은 제외하라”고 지시했으나 2013년 입사한 바람에 퇴직해야 하는 20대 직원은 더 억울할 수도 있다.

정치권은 고령화사회를 대비해야 한다며 ‘60세 정년 연장’을 도입했지만 인건비 부담을 우려한 기업이 미리 젊은 근로자까지 감원에 나선 것은 기막힌 역설이다. 국회가 2013년 정년연장법을 임금피크제와 연동하지 않고 덜컥 통과시킨 후유증이 현실로 닥친 것이다. 게다가 같은 해 노사정의 일자리협약에서 대기업이 청년 채용을 늘리기로 한 데 이어 올 7월 정부의 독려로 대기업들이 2017년까지 ‘청년일자리 20만+프로젝트’에 동참해 16만 명을 채용하기로 한 것이 부메랑처럼 기업 부담으로 돌아왔다. 경기가 악화된 데다 저성과자를 해고하기 어려운 노동법 때문에 20대까지 무차별 퇴직 압박을 받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용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경제활성화와 노동개혁이 시급한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민간 부문과 달리 공무원과 공기업 등 공공 분야는 감원의 무풍(無風)지대여서 국민의 상대적 박탈감을 키운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영국 보수당 정부는 재정 절감과 ‘작은 정부’ 구현을 위해 앞으로 5년간 10만 명의 공무원을 줄이고 자신을 포함한 각료의 봉급도 동결했다. 반면 한국은 공무원 정원이 계속 늘어나 작년 말 사상 처음으로 100만 명을 돌파했다. 내년 공무원 봉급도 평균 3% 오른다.

정부가 성과로 내세우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미흡하기 짝이 없다. 313개 공공기관이 지난달 말 임금피크제 도입을 완료했지만 고통 분담의 수준이 민간 부문보다 훨씬 낮아 무늬만 개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간은 언제 잘려 나갈지 모르는 불안감에 떠는데 ‘공(公)귀족’들만 살판나는 현실은 국가 경쟁력이나 민관(民官)의 형평성 차원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민과 관의 고통 분담이 절실하다.
#60세 정년제#임금피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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