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 서민 배고픔 달래던 신라면, 세계 별미 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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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경제성장 70년]

1945년, 광복의 기쁨을 맛봤어도 어려운 생계가 한순간에 핀 것은 아니었다. 보릿고개는 여전했고 하루 한 끼 식사가 쉽지 않은 어려움도 십수 년 더 이어졌다. 쌀이 모자라 배 곯던 시대가 이어지던 1963년 라면의 탄생은 한국 식량사(食糧史)에 한 획을 그은 발명이었다. 그리고 1986년 그 라면사(史)에 다시 한 획을 그은 신라면이 처음 출시됐다.

신라면은 ‘한국인의 매운맛’을 목표로 만들어진 라면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소고기 장국의 얼큰한 매운맛을 만들려 연구했다”는 것이 농심 측의 설명이다. 개발팀은 전국에서 재배되는 모든 종류의 고추를 사들여 매운맛을 실험했다. 원하는 맛이 나오지 않자 개발팀은 다진양념(다대기)에도 손을 댔다. 다진양념을 쓰는 곳이면 칼국숫집이든 설렁탕집이든 냉면집이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돌아다녔다. 고춧가루와 마늘, 생강이 섞여 만들어진 신라면의 매운맛은 발끝에서 나왔다.

식감을 책임지는 면 역시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안성탕면보다는 굵고 너구리보다는 가늘면서 쫄깃해야 한다”는 지령에 맞춰야 했다. 실험용 면만 200종류 넘게 만들었고, 초시계와 온도계가 동원됐다. 국물이 발에서 나왔다면 면은 입에서 나왔다. 연구원들은 하루 평균 3봉지 분량의 면을 먹어치웠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성과는 좋았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신라면은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농심에 30억 원의 매출을 올려줬다. 내년이면 서른 살이 되는 신라면은 지금까지 240억 개가 팔렸다. 일렬로 늘어놓으면 지구를 108바퀴 돌 수 있는 양이다. 1986년 서민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신라면은 이제 융프라우에서 히말라야까지 세계인의 별미가 되어 ‘한국의 맛’을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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