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금리시대 금융권 영업현장 가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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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금손실 가능성은 얼버무린채…
“1%대 이자 적금대신 펀드 드세요”

“요즘 누가 적금 드나요. 펀드가 대세죠.”

지난달 30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A은행 지점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마주 앉은 창구 직원은 펀드 가입을 추천했다. 매달 50만 원씩 납입해 목돈을 모으고 싶다고 문의하자 나온 반응이었다. 이 직원은 “예·적금 금리는 연 1%대여서 이자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고객 대부분이 적금 대신 펀드를 가입한다”고 권했다.

투자성향 분석 결과 기자는 5등급 가운데 안정추구형인 2등급이 나왔다. 기자가 “투자 경험이 전혀 없고 원금 보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밝히자 직원은 “펀드와 적금에 나눠 가입하는 건 어떠냐”면서 초고위험 등급(5등급)인 주식형펀드 2종류를 추천했다.

연 1%대 초저금리 시대가 열리면서 투자를 망설이는 고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금융회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일선 창구의 영업 경쟁이 뜨거워지면서 ‘불완전판매’에 대한 우려도 다시 커지고 있다. 창구 직원들이 낮은 금리에 실망한 고객들을 붙잡기 위해 보수적인 투자자들에게도 금융투자 상품을 적극 권하며 원금 손실 가능성을 축소해 설명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 ELS 권하며 “원금 손실 없을 것”

동아일보 취재팀이 찾은 영등포구 인근의 B증권사 지점. 목돈 2000만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자 창구 직원은 주가연계증권(ELS) 가입을 권유했다. 하지만 투자자 성향 분석에서 2등급이 나오자 “본인 투자성향보다 위험한 상품에 가입한다는 부적합확인서를 작성하면 괜찮다”라고 설명했다. 이 직원은 “성향보다는 위험한 상품”이라고 설명했지만 원금 손실 가능성에 대해서는 “웬만해서는 원금 손실이 없을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금융사들은 “투자자 성향과 다른 투자 권유가 절차상 불완전판매는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부적합확인서는 금융당국이 허용한 자료이며, 원금손실 가능성은 고객 서명을 받은 서류에 설명돼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객들이 절차와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적극적으로 확인하는 창구 직원들은 만나기 어려웠다.

최근 C증권사에서 퇴직연금 펀드에 가입하며 2가지 주식혼합형 펀드를 선택한 직장인 이모 씨(33)는 “노후를 책임질 중요한 계약인데, 창구 직원은 상품 설명서의 ‘스프레드’ ‘매크로 전략’ 등 전문용어를 아무런 설명 없이 줄줄 읽고 ‘이해했느냐’며 서명을 요구해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 금융사는 직원들에게 “투자상품 판매 할당”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예·적금 등에서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투자상품으로 눈을 돌리며 증권사로 이탈하는 고객들이 늘자, 일부 시중은행들은 직원이나 지점 평가에서 고위험군 상품 판매 실적을 강조하며 판매량을 할당하고 있다.

최근 은행과 증권사 통합형 점포를 발족한 한 시중은행의 직원은 “본사에서 ‘예·적금 문의 고객을 증권 쪽으로 유도하라’고 교육했다”고 말했다. 은행원 송모 씨(31)는 “은행 고객은 보수적 투자자들인데, 이들에게 펀드나 ELS를 판매하려고 하면 아무래도 ‘원금 손실 가능성’을 덜 강조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금융투자업계 민원·분쟁은 1055건으로 지난해 하반기(1016건)보다 4% 늘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불완전판매만 피하면 된다는 금융사의 태도가 소비자의 신뢰를 무너뜨린다”며 “투자자들을 배려해 상품 설명을 쉽고 정확하게 해야 장기적으로 이득”이라고 강조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김철웅 인턴기자 한양대 경영학과 4학년
#금리#금융권#영업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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