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한국 독주 D램시장에 발 들이민 왕서방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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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칭화그룹, 세계3위 마이크론 인수 타진… 국내기업들 긴장

한국 기업들이 독주하고 있는 D램 시장에 중국이 뛰어든다. 아직은 중국 기업들이 D램 시장에서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지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거센 추격이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세계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도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3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국영 기업인 칭화유니그룹이 미국 D램 업체 마이크론의 인수를 타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는 “칭화유니그룹이 마이크론 주식 한 주당 21달러, 총 230억 달러(약 25조9900억 원)를 인수가격으로 제시했다”고 전했다. 반도체 칩 디자인회사인 칭화유니그룹은 중국의 국립대학인 칭화대가 설립한 기술지주회사 ‘칭화홀딩스’의 자회사다. 칭화유니그룹에 앞서 지난달에는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패널 제조사인 BOE(징둥팡·京東方)도 D램 시장 진출을 밝힌 바 있다.

이 소식에 주가도 출렁였다. 삼성전자는 14일 전일 대비 3.24% 떨어진 122만5000원, SK하이닉스는 6.66% 급락한 3만7850원에 거래를 마쳤다.

마이크론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은 세계 3위 D램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은 약 114억 달러(약 12조8820억 원)로 25% 안팎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마이크론이 중국으로 넘어가게 되면 D램 업계의 판세가 확연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산업의 내재화(內在化)가 절실한 중국이 대규모 지원을 통해 기술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 반도체 수입국으로, 연간 2000억 달러(약 228조 원)가 넘는 돈을 반도체 수입에 쓰고 있다. 이를 자국산으로 대체하기 위해 22조 원에 이르는 반도체 전용 국부(國富)펀드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지난해 10월 밝힌 바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디스플레이패널 기업들이 보여주고 있는 빠른 추격이 반도체 시장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인수는 올해 여러 차례 있었던 반도체 업계 대규모 인수합병(M&A)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지난달 초 발표된 인텔의 차량 및 항공용 반도체 전문기업 알테라 인수나 5월 결정된 아바고의 미국 통신 칩셋 기업 브로드컴 인수는 모두 기존 강자(强者)들이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기 위한 M&A였다. 이때만 해도 국내 기업들은 “주력인 메모리와 겹치지 않는 분야”라며 느긋한 입장이었다.

반면 중국의 마이크론 인수는 국내 기업들이 우려할 수밖에 없는 구도다. 한국 기업들이 바닥에서부터 쌓아 올린 기술을 중국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M&A로 한 번에 얻게 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중국의 마이크론 인수는 워스트(가장 나쁜) 시나리오”라며 “하지만 현재 공정 기술이 2∼3세대 이상 앞서 있어 우리가 쉽게 추격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야심은 D램뿐만이 아니다. 비(非)메모리 분야인 시스템반도체 산업은 1990년대부터 육성을 시작했다. 삼성전자 외에는 대부분 매출 1000억 원을 넘지 못하는 영세한 기업만 포진한 한국과는 달리, 중국은 매출이 1조 원이 넘는 시스템반도체 기업을 여러 곳 보유하고 있다. 그중 하나인 스프레드트럼은 마이크론 인수를 추진하는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다.

인텔, 퀄컴 등 이 분야 선두권의 기업들과 협업도 활발하다. 사실상 막대한 구매력을 바탕으로 한 반강제적 협업을 외국 기업들에 강요하며 기술을 흡수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두뇌’격인 모바일AP 시장 1위인 미국 퀄컴은 올해 2월 중국 정부로부터 반독점법 위반으로 1조 원의 과징금과 특허료 인하를 요청받고 그대로 따르는 한편 현지 업체인 SMIC 화웨이 등과 합작사를 만들기로 했다. 인텔은 지난해 칭화유니그룹의 지분을 20% 사들였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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