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 80% 의존한 현대·기아車 ‘감속’에 실적 ‘급제동’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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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동차부품산업 빨간불]

현대·기아자동차의 주요 협력사인 평화정공은 지난해 1조568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9986억 원)에 비해 매출은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오히려 687억 원에서 509억 원으로 줄었다. 영업이익률이 6.9%에서 4.8%로 급감해 수익성이 악화된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판매 목표 800만 대를 달성하기 위해 마케팅을 강화하는 등 공격적인 판매에 나서면서 수익성 감소를 감내했다. 이 때문에 현대·기아차에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업체들도 영업이익을 줄여 낮은 단가에 납품할 수밖에 없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완성차 업계의 영업이익이 악화되면서 부품업체들의 영업이익도 함께 나빠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자동차 부품산업에 위기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현대·기아차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데다 연구개발(R&D) 투자까지 저조해 부품업체들은 현대·기아차를 대체할 글로벌 완성차 업체를 찾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 현대·기아차와 ‘운명 공동체’

지난해 국내 1차 부품업체들이 국내 완성차 업계에 납품한 금액은 모두 51조9993억 원이다. 이 가운데 현대·기아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80%이다. 자동차 부품업계는 사실상 현대·기아차와 운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는 현대·기아차가 성장할 때는 부품사들도 동반 성장하는 효과를 냈다. 하지만 최근 현대·기아차의 성장세가 둔화되자 국내 부품업체들은 직격탄을 맞게 된 셈이다.

장우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내수시장이 크지 않고 완성차 업체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부품업계의 현대·기아차 의존은 당연하다”면서 “완성차 업체가 많은 유럽은 경쟁력 있는 부품업체가 오히려 납품할 완성차 업체를 고르는 등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엔화 약세도 국내 부품업체들에는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일본에 자동변속기 관련 부품을 수출하는 삼보모터스의 류대선 이사는 “현재의 엔화 환율은 부품업체에는 엄청난 쇼크”라며 “도요타로부터 ‘일본에서 부품 구하는 것이 더 싸다’는 말을 듣고는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토로했다.

○ 연구개발 투자 부족에 ‘성장 한계’

한국 부품업체들의 기술력이 과거보다 높아졌다는 것은 자동차 업계의 중론이다. 산업연구원이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국내 업체들의 품질 수준은 2012년 일본 업체의 93.5%까지 추격했다. 일본과의 격차가 심했던 내구성, 정밀도 등 핵심 분야의 품질 격차도 크게 좁혀졌다.

하지만 국내 부품업계가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수준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3년 주요국 자동차 부품산업의 연구개발 집약도(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는 독일(7.35%) 프랑스(4.38%) 일본(4.02%) 미국(2.12%)보다 한국(1.65%)이 크게 뒤처진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국내에 자산 1000억 원 이상의 1차 협력사가 880개 정도인데 이 중 연구개발을 하는 곳은 280개, 제대로 하는 곳은 100개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의 대일(對日) 자동차 부품 수출이 늘어난 것도 상당 부분은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의 부품 수출이 늘면서 나타난 착시 현상이라는 해석도 있다. 한국에 들어온 글로벌 부품사들이 일본 수출을 대폭 늘렸다는 것이다.

○ 전기차 시대 준비하고 중국 업체 뚫어야

전문가들은 부품업체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술력을 높여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2025년이면 신차의 15%가 전기 동력발생장치를 갖출 것으로 보여 전기차 시대에 대비한 기술 확보가 절실하다.

문병기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이제 자동차 업계는 정보기술(IT) 업종과 협업을 많이 해야 할 때”라며 “아직 경쟁력이 약한 중소기업은 완성차 업체와 공동으로 제품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급성장하는 중국 완성차 업체를 적극 공략하는 것도 방법이다. 부품업체 관계자는 “중국 완성차 업체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기술 수준이 낮아 한국 업체가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1980년대 엔화 강세를 극복한 일본 업체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엔고가 극심했던 1980년대에 도요타와 협력업체들도 피를 말리는 원가 절감에 나섰다. 당시 도요타는 부품업체에 저가 납품을 강요하기보다 협력사에 출자를 하면서 장기적인 거래를 이어나갔다. 도요타의 계열사로 세계적인 부품업체인 덴소도 전체 매출에서 도요타로 공급하는 비중을 51%대로 낮춰 공급처를 다변화했다.

○ ‘풀뿌리 기술’인 튜닝업체 키워야

부품산업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다른 대안으로 튜닝산업도 꼽힌다. 튜닝기술은 자동차 전문가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풀뿌리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자동차 선진국에서는 튜닝을 통해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 신기술이 먼저 적용되고 이들에게 검증받은 뒤 양산차에도 적용되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미국의 튜닝시장 규모는 35조 원, 독일은 23조 원, 일본은 14조 원에 이른다. 반면 한국의 튜닝시장은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이라는 위치가 무색한 5000억 원에 그친다.

이 때문에 정부는 2013년 8월 튜닝시장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지만 그 혜택은 고스란히 외국 업체들이 차지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실제 세계적인 부품업체 보쉬는 2000억 원을 투자해 국내 와이퍼 제작업체인 KCW와 대구에 합작회사를 세우고 올해에만 연구개발비 3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중소 규모의 국내 부품사들은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 업체로부터 기술을 배워 나가야 한다”며 “튜닝산업 육성을 위해 책정한 예산을 지방자치단체들이 나눠 먹기식으로 배분하지 않도록 정부가 효율적인 분야에서 부품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성규 sunggyu@donga.com·정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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