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치영]기업 구조조정, 제대로 하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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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치영 경제부 차장
신치영 경제부 차장
고리타분하고 어른인 척하는 사람을 흔히 ‘꼰대’라고 부른다. 연식이 오래될수록 꼰대라고 불릴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자신이 꼰대인지 알아볼 수 있는 자가진단법을 소개한다. 삼성경제연구소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을 각색한 것이다. 3가지 이상 해당되면 초기 꼰대, 5가지 이상이면 중증 꼰대쯤 된다.

①적게 듣고 많이 이야기한다. ②같은 말을 두 번 이상 반복한다. ③자기 견해만 옳다고 주장한다. ④공연 관람 등의 문화생활을 멀리한다. ⑤‘요즘 젊은 것들은…’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한다. ⑥함부로 반말을 하기 시작한다. ⑦과식·과음하고 체중관리를 게을리한다. ⑧유머감각이 떨어진다. ⑨‘나라 걱정’이 많아진다.

너무 심각한 주제가 될 것 같아 객쩍은 소리 먼저 해봤다. 필자도 꼰대가 돼 가는지 이런저런 나라 걱정이 많이 든다. 요즘은 기업 구조조정이 걱정이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쓰러지는 기업이 늘어가는데 이런 기업들을 처리하는 과정이 자꾸 삐걱거리는 것 같아서다.

죽어가는 기업을 살리는 구조조정은 해당 기업 경영진과 채권단, 금융감독 당국의 호흡이 중요하다. 경영진이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하고, 채권은행들이 추가 지원을 미적거리고, 금융당국이 이해관계를 조율하지 않으면 구조조정은 끝장난다.

2013년 STX그룹 구조조정 와중에 금융감독원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STX팬오션에 대한 자금지원 문제를 놓고 격하게 대립했다. 금감원장이 직접 나서 자금 지원을 요구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생각한 산은은 이를 거부했다. STX팬오션은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후 금감원은 산업은행에 대해 3차례에 걸쳐 강도 높은 검사를 벌여 분식회계를 알면서도 STX에 추가 지원을 했다는 이유로 산업은행 임직원 18명에 대해 제재를 결정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은행권 구조조정 담당자들은 구조조정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에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동부그룹, 성동조선 구조조정이 그래서 꼬였다.

경남기업 사례는 요즘 금융감독 당국까지 움츠러들게 만들고 있다. 검찰은 김진수 전 금감원 부원장보가 2013년 10월 경남기업 채권단에 무상감자 없는 출자전환과 추가 대출을 종용한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검찰은 그가 누구의 지시를 받고 움직였는지, 윗선의 누가 금감원에 외압을 넣었는지 등 핵심 의혹은 아무것도 밝히지 못했다.

법원은 “금융감독 당국의 역할에 대해 법리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지만 금감원 직원들은 크게 술렁이고 있다. 실무자들이 사법처리를 당하는 마당에 구조조정에 개입해 채권단 이견을 조율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기업 구조조정은 일시적으로 위기를 겪는 기업에 추가 지원을 해줘 경영을 정상화하는 과정이다. 거래업체 직원들까지 수만 명의 일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는 만큼 금융감독 당국의 이해 조정과 중재는 필수적이다.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은 금융위원회와의 협의를 통해 기업 구조조정 절차를 규정한 새로운 기업구조조정촉진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금감원이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됐다. 원활한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청탁과 로비, 사익이 끼어들면 법과 제도는 언제든지 무력화된다.

금융감독위원장 시절 워크아웃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회고록 ‘위기를 쏘다’에 쓴 것처럼 언제나 중요한 것은 제도보다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이다. 진정성과 투명성이 의심받으면 구조조정은 불가능하다.

신치영 경제부 차장 higgledy@donga.com
#기업#구조조정#꼰대#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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