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규제에 막힌 UHD TV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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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소비전력 기준 강화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기업이 생산 중인 초고화질(UHD) TV 제품 중 3분의 2가 유럽연합(EU)의 새 소비전력 규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뜩이나 수요 감소와 환율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TV업체에 비상이 걸렸다.

12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EU는 환경보호를 위해 전자제품에 적용하는 기술 규제인 ‘에코디자인’ 개정안을 최근 발표했다. 소비전력 규제 등이 한층 강화된 이번 개정안은 2017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다. 국내 기업들은 “개정안이 그대로 적용되면 생산 공정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원가가 치솟아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 한국 UHD TV 15개 모델 중 10개 모델이 2년 뒤 ‘판매 불가’


EU 에코디자인 개정안의 가장 큰 변화는 TV 소비전력 허용치를 정하는 방식이다. 지금은 TV 화면이 클수록 평균소비전력 허용치도 똑같이 늘어나는 ‘정비례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반면 개정안에서는 화면이 커져도 허용치 상승폭은 줄어드는 ‘수렴 방식’을 택했다. 화면이 큰 제품일수록 적용되는 규제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셈이다. 최근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방한한 EU 관계자는 “기존 규제로는 절반 이상의 제품이 최고 등급을 받고 있어 더욱 강한 방침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개정안이 고화질 대형 제품으로 선전하고 있는 국내 제조사들을 정면으로 겨냥한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유럽 시장 공략의 주무기로 삼고 있는 UHD TV는 한 등급 아래인 풀HD TV에 비해 전력 소모량이 월등히 많다. 하지만 에코디자인 개정안은 평균소비전력 판매 허용치를 풀HD 수준으로 강화했다.

실제로 시험 결과 시장에 나와 있는 최신 UHD TV 15개 모델 중 10개 모델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부터 시행되는 1단계 개정안은 80인치대 화면 크기의 제품 4개 모델 중 3개 모델, 2019년 시행되는 2단계 개정안은 40∼70인치대 제품 11개 모델 중 7개 모델이 평균전력소비량 허용치를 초과했다.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관계자는 “미국, 한국 등 대부분 지역에서는 UHD TV에 완화된 별도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며 “EU는 화질에 상관없이 같은 기준을 적용해 고급 제품이 주무기인 국내 기업에 매우 불리하다”고 설명했다.

○ 수요 침체, 환율 문제에 이은 악재

최근 TV 시장은 시장 포화에 따른 수요 부진과 환율 문제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위츠뷰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세계 10대 TV 제조사 출하량 합계는 5140만 대로 지난해 같은 시기(6720만 대)에 비해 23.5% 줄었다. 유럽과 이머징 시장의 통화가치가 급락하면서 수익성마저 나빠졌다.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부문과 LG전자 홈엔터테인먼트(HE)사업본부는 1분기 각각 1400억 원과 62억 원의 적자를 냈다.

EU의 규제 강화 방침은 설상가상의 악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유럽은 중국과 북미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시장인 데다 국내 기업들이 위기 탈출의 돌파구로 삼고 있는 프리미엄 제품 비중이 높은 곳이다. 국내 TV업체 관계자는 “에코디자인 개정안을 만족시키려면 UHD TV에 지금보다 비싼 소자(素子)를 써야 한다”며 “가격이 지나치게 오르게 되면 프리미엄 시장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국내 전자업계는 EU에 “규제 강화가 결국 유럽 지역의 소비자 후생을 감소시킬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건의문을 발송했지만 실제로 규제 완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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