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왕이 아니라고? ‘레드오션의 함정’ 6가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3일 16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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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결제시스템인 페이팔을 만들어 억만장자가 된 미국의 벤처투자자 피터 틸은 저서 ‘제로 투 원’에서 “경쟁하지 말고 독점하라”고 말한다. 이 책은 몇 달째 베스트셀러다. 여러 업체가 경쟁을 벌이는 큰 시장에서 이기려고 하지 말고 작지만 새로운 나만의 영역을 만들어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는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의 김위찬 교수가 주창했던 ‘블루오션 전략’과 맥이 닿아 있다. 김 교수는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 시장에서 힘 빼지 말고 자신만의 새로운 시장, 블루오션을 만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많은 기업인들은 ‘블루오션 전략’이든 ‘제로 투 원’이든 ‘말이야 쉽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블루오션 시장을 일궈보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기업은 없다. 그러나 아는 것과 하는 것은 다르다. 실제 블루오션을 창출하는데 성공한 기업은 많지 않다.

무엇이 문제일까. 2004년 블루오션 전략을 소개한 후 강의와 컨설팅 활동을 병행해온 김 교수는 레드오션 사업에 익숙한 기업인들의 습관을 깨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말한다. 그는 블루오션 시장 개척을 막는 ‘레드오션의 함정’을 6가지로 정리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 한국어판 3월호에 발표된 논문을 요약 소개한다.

●‘고객은 왕’이 아니다


블루오션 시장 창출 전략의 핵심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자면 ‘비고객’을 고객으로 바꿔놓아야 한다. 그런데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은 고객을 우선해야한다고 생각하기 십상이고, 그러다보니 거의 반사적으로 기존 고객에게 초점을 맞춰 그들의 만족도를 향상하는 데 주력하게 된다.

일본의 소니는 2006년 전자책 단말기를 만들면서 기존 제품이 너무 무겁고 화질이 떨어진다는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더 얇고 가벼우며 가독성이 좋은 스크린을 장착한 기기를 내놓았다. 언론에서 찬사가 쏟아지고 고객들은 만족했지만 정작 매출은 늘지 않았다.

이에 비해 아마존은 2007년 전자책 ‘킨들’을 출시하면서 하드웨어 성능보다는 더 많은 콘텐츠를 확보하는데 주력했다. 이 회사는 기존 전자책 사용자들의 불평보다는 전자책을 사지 않는 사람들, 이른바 ‘비(非)고객’에 초점을 맞췄다. 비고객들은 볼 수 있는 책의 종류가 적고 다운로드가 불편해 전자책을 이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니보다 4배 이상 많은 도서를 확보했고 무선인터넷으로 손쉽게 다운로드할 수 있게 했다. 결국 소니는 시장에서 철수했고 아마존이 압도적 강자가 됐다.

●시장창출 전략과 틈새시장 전략은 다르다


마케팅 담당자들은 시장을 잘게 세분화해 틈새시장을 발견하고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블루오션과는 다르다. 미국의 델타항공은 ‘멋을 중시하는 전문직 여성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항공사가 없다는 점에 착안해 이들의 입맛에 맞춰 유기농 음식, 맞춤형 칵테일과 운동용 밴드를 제공하는 자회사를 2003년 설립했다. 그러나 이런 고객군 자체가 너무 작았다. 이 자회사는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반면 영국의 샌드위치 체인점 프레타망제는 시장창출 전략을 제대로 이해한 사례다. 이 회사는 점심시간에 조리 식품을 구매하는 고객에 세 부류가 있다고 파악했다. 레스토랑에 가는 전문직 종사자, 패스트푸드점에 가는 사람들, 그리고 테이크아웃 이용자들이었다. 이 세 부류에는 차이점이 많았지만 공통점도 있었다. 신선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적당한 가격에 받아서 빨리 먹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프레타망제는 이를 간파하고 ‘세련된 매장에서 신선한 식자재로 패스트푸드점보다 빠르게 레스토랑 수준의 샌드위치를 팔자’고 생각했다. 이전의 어느 업체도 하지 못했던 생각이다. 프레타망제는 영국의 대표적인 샌드위치 체인이 됐다.

●기술 혁신이 새로운 시장을 만들지는 못 한다


2001년 시장에 선보인 이륜 이동기구 ‘세그웨이’는 경이로운 기술이 들어간 제품이었다. 탑승자가 몸을 숙이면 앞으로 전진하고 뒤로 젖히면 후진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불편한 점이 많았다. 평소에는 어디다 세워둬야 할지, 인도에서 타야할지 도로에서 타야할지, 버스나 기차에 들고 탈 수 있을지 등 애매한 점이 많았다. 매출은 당초 예상을 밑돌았고 2009년 회사가 매각됐다.
새롭고 수익성 좋은 시장을 여는 힘은 기술 혁신이 아니라 가치 혁신에서 나온다. 사용하기 편하고, 단순하고, 재미있고 또 환경에 좋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호주산 와인 ‘옐로 테일’은 새로울 게 전혀 없는 맛이지만 ‘누구나 유쾌하게 마실 수 있는 소박한 와인’으로 홍보해서 큰 성과를 거뒀다.

●‘파괴적 창조’보다 ‘비파괴적 창조’의 길을 찾아라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은 필름 산업을 초토화시켰다. 많은 기업인들은 이렇게 파괴적인 신제품을 만드는 게 블루오션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파괴적 창조 전략은 기존 분야에 속한 사람들의 집단적 반발을 불러오기 쉽다. 심지어 같은 회사 안에서도 파괴적 신제품 팀은 배척을 당한다.

기존 산업을 파괴하지 않고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남성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는 다른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고도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냈다.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은 소액대출산업을 창조했지만 기존 은행들의 방해를 받지 않았다. 닌텐도의 ‘위’ 게임기 역시 기존 게임기를 대체하지 않고 보완했다. 이전까지 비디오게임을 즐기지 않았던 성인층과 어린 아이들을 이 시장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차별화가 전부는 아니다


기업인들은 종종 고급스러운 제품으로 남들과 차별화하자는 생각을 한다. 비싸도 그만큼의 가치를 주면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항상 성공하지는 않는다. 2000년 BMW가 내놓은 고급형 스쿠터 C1은 운전자를 보호하기 위한 지붕도 있고 전면 유리엔 와이퍼도 달려있었다. 고급 안전벨트도 달았다. 대신 일반 스쿠터보다 2배가량 비쌌다. 차별화에는 확실히 성공했지만 판매는 부진했다. 결국 출시 3년 만에 생산을 중단했다.

●저가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조건 비싸게 만드는 것이 소용없듯이 무조건 싸게 만드는 전략에도 한계가 있다. 진정한 시장 창출 전략은 차별화와 비용 절감을 동시에 추구한다. 미국의 사우스웨스트 항공과 스위스의 시계업체 스와치는 경쟁사에 비해 가격도 낮은데다 자기 브랜드만의 친근함과 재미를 줘서 고객의 사랑을 받는다.

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면 얼마든지 고가격으로도 승부할 수 있다. 서커스 업계에서 ‘태양의 서커스’가, 커피 업계에서 스타벅스가 그렇게 성공했다. 기존 업계 경쟁자들을 감안해 가격을 책정하는 게 아니라 현재 비고객들이 이용하고 있는 대체재를 감안해 가격을 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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