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뒷짐 ‘화·해·조’… 기초체력 달려 글로벌경쟁서 뒤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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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주력 업종 ‘몸살’]

#1. 한화케미칼은 지난해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배터리 양극재 사업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2010년 생산 라인을 연산 600t 규모로 마련했지만 수요가 부진한 데다 LG화학, 삼성SDI, 파나소닉 등 선발주자와 격차마저 벌어졌기 때문이다.

#2. 일본 최대 조선회사 이마바리조선은 최근 400억 엔(약 3700억 원)을 투자해 16년 만에 길이 600m, 폭 80m의 초대형 독을 건설하기로 했다. 일본 내 4위 조선사 가와사키중공업은 지난해 회계연도(2014년 4월∼2015년 3월) 순이익이 전년보다 45% 늘어난 560억 엔(약 5252억 원)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3분기(1∼9월) 적자만 3조2272억 원이다.

#3. 글로벌 해운 1위 머스크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2011년 5302억 원의 적자를 냈다. 그러나 이듬해 흑자전환했고 지난해 1∼3분기 1조991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반면 2011년 머스크와 비슷한 규모인 5129억 원의 적자를 낸 한진해운은 지난해 겨우 흑자전환(821억 원)했다. 》

최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국내 화학·조선·해운업체의 현실이다. 이들의 하소연은 한결같다.

‘글로벌 저성장 기조로 산업 수요가 감소했다. 해외 업체들의 저가 공세를 제대로 막지 못했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석유화학업체들은 재고 손실이 커졌고 조선업체들은 해양플랜트 발주가 감소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해외 업체들도 위기를 겪고 있을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해외 업체들은 이미 혁신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거나 피해갔다. 결국 국내 업체들은 기초체력이 부실해 위기를 자초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업 차별화와 고부가가치화가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화학, 선제적 사업 구조조정 시급

화학정보 제공업체 ICIS가 집계한 글로벌 톱100 기업 중 1∼10위 업체의 영업이익률 평균은 2013년 9.5%에서 지난해 1∼3분기 10.5%로 상승했다. 그러나 톱100 안에 드는 LG화학, 롯데케미칼, SK종합화학, 한화케미칼 등 4개사의 영업이익률 평균은 4.3%에서 3.6%로 감소했다. 선두업체가 선전한 비결은 선제적 사업 구조조정이었다.

지난해 1∼3분기 10.8%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바스프(1위)는 1990년대 중동회사들이 저가 석유화학 제품으로 유럽에 진출하자 고부가가치 제품을 통해 차별화했다. 바스프는 2003년 섬유, 2005년 폴리에틸렌(PE), 2009년 스틸렌모노머 등 범용 석유화학제품 부문을 매각하거나 분사했다. 그 대신 2010년 화장품 원료를 만드는 코스니스를 인수했고 2013년엔 헨켈의 엔자임(세제 효소) 부문을 인수했다.

듀폰(8위)은 1802년 화약 제조회사로 시작했지만 1900년대엔 석유화학 회사, 2000년대엔 종합과학 회사로 변신했다. 꾸준한 혁신을 통해 지난해 1∼3분기 영업이익률은 14.7%를 기록했다. 임지수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2012년 국내 화학산업 생산액에서 석유화학이 67%에 달했다”며 “한국은 중국 시장을 믿고 석유화학에 안주하면서 역풍을 맞았다”고 지적했다.

○ 해운, 원가 절감과 사업 다각화 필요


머스크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남미 안데스 노선, 서지중해 노선, 중동 노선 등 수익이 떨어지는 노선부터 정리했다. 이에 2013년 선복량(적재 능력)은 2012년보다 8% 줄었지만 벙커선의 연료 소비를 12% 절감했다. 또 컨테이너 선박의 크기를 1만30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급에서 1만8270TEU까지 키우면서 컨테이너당 연료 소비량도 12% 줄였다. 이를 통해 2013년 영업비용 7억 달러(약 7700억 원)를 절약했다.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 국내 해운업체는 대부분 해상 운송 서비스 사업에 의존해 글로벌 경기에 영향을 많이 받지만 해외 선사는 컨테이너터미널, 선박관리회사, 해운 컨설팅, 해사 중재, 해상보험 등 사업 분야를 다각화해 리스크를 줄이고 있다. 황진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운정책연구실장은 “독일 선주들은 선박 가격이 최저치이던 2003, 2004년 선박을 가장 많이 사둔 반면, 국내 선사들은 2006, 2007년 가격이 오르고 나서야 선박을 구매하면서 많은 비용을 지출했다”고 말했다.

○ 조선, 기술 고도화와 가격경쟁력 확보

국제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인 클라크슨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선박 수주잔량을 기준으로 글로벌 톱10 조선사 중 6∼8위(중국)를 제외하곤 모두 한국 업체다. 그러나 이미 중국은 국가별 수주량에서 한국을 제쳤다. 중국은 2010년 조선 3대 지표(건조량 수주량 수주잔량)에서 모두 세계 1위였다. 반면 한국은 한 해 수주 점유율이 2011년 40%에서 지난해 29.7%로 추락했다.

중국 수주량이 증가하는 것은 자국 내 일감 몰아주기와 가격 경쟁력 때문이다. 그러나 벌크선과 같은 범용 선박에서는 설계 수준이 거의 한국산에 근접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최근 중국은 액화천연가스(LNG)선과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에도 손을 대고 있어 몇 년 뒤 빠르게 한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유럽에 이어 조선업 세계 1위를 이끌다 한국에 선두를 내준 일본은 엔화 약세를 등에 업고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업체별 통폐합을 통해 규모를 키우면서다. 지난해 IHI머린유나이티드와 유니버설조선이 합병해 저팬머린유나이티드가 생겼다. 이마바리조선과 미쓰비시중공업은 LNG선박 부문만 따로 떼 LNG 전문 조선소를 설립했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국내 중소조선소는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철판 및 기자재 공동구매로 원가경쟁력을 강화하고, 공동 연구개발(R&D)로 기술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유현 yhkang@donga.com·최예나·김성규 기자
#화학#조선#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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