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나는 누군가에게 얼마나 의미있는 사람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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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새로 만난 사람이 ‘정말로 의미있는’ 여자이기를 기대하면서도(그런 기대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동시에 한정된 카드를 인생의 너무 이른 단계에서 다 써버릴까봐 겁이 나기도 했던 것이다. -도쿄기담집 중 ‘날마다 이동하는 콩팥 모양의 돌’(무라카미 하루키·비채·2014년) 》

소설 속 주인공 준페이는 여자를 만날 때마다 저런 고민을 한다. 아버지의 말 때문이다. 아버지는 준페이가 열여섯 살 때 “남자가 평생 동안 만나는 여자 중에 정말로 의미 있는 여자는 세 명뿐이다. 그보다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다”고 단언했다.

준페이는 대학교 때 사귄 애인 중 한 명이 ‘첫 번째 의미 있는 여자’라고 확신한다. 그렇다면 그에게 남은 ‘의미 있는 여자’는 두 명뿐이다. 의미 없는 여자에게는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 보니 여자를 만나면 그녀가 ‘의미 있는 여자’인지 알아내려 노력한다. 아니다 싶으면 이내 시큰둥해지고 자연스레 상대와 멀어지게 된다.

많은 사람이 준페이와 비슷하다. 누군가를 만나면 이 사람이 괜찮은 사람인지 파악하려 애쓴다. 대놓고 물어볼 순 없으니 혼자 알아내야만 한다.

준페이와 뭇사람들의 행동이 틀린 행동이 아니려면, 우선 ‘의미 있는 사람을 만날 기회는 제한적’이라는 전제가 맞아야 한다. 솔직히 아니라고 말하긴 힘들 듯하다. 또 하나, 전제돼야 할 것은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명제다. 내가 상대방을 바꾸기는 힘드니, 그저 상대방이 원래부터 좋은 사람이었길 바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준페이와 그의 아버지는 꽤나 합리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하나 간과한 게 있다. 내가 남을 바꾸기는 힘들어도 내가 나를 바꾸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누군가와 멀어지는 순간은 내가 그 사람에게 경계심을 보일 때부터다. 괜찮은 사람을 가려내는 데 쏟는 에너지,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는 데 쏟는 에너지, 내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 결정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날마다 이동하는 콩팥 모양의 돌#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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