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딩법안 18개월째 낮잠… 해외에 손벌리는 기술 벤처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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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日 등 스타트업 지원 한창인데… 국내 크라우드펀딩 활성화는 말뿐
기술력 있지만 인지도 낮은 벤처들… 입법 지연으로 돈가뭄에 발동동

한국의 스타트업(창업기업)인 ‘직토’는 지난해 12월 미국 온라인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업체 킥스타터를 통해 일반 투자자들에게서 40여 일간 16만4000여 달러(약 1억8000만 원)의 투자금을 모았다. 미국 개인투자자 822명은 직토가 만든 ‘아키밴드’의 제품 소개 동영상과 시제품만 보고 투자를 결정했다. 아키밴드는 걸음걸이 교정을 도와주는 손목시계 형태의 웨어러블 기기다. 직토는 이 투자금을 활용해 올해 4월에 정식으로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아방지 팔찌를 개발한 한국의 리니어블은 미국의 온라인 크라우드펀딩 업체 인디고고에서 4만 달러가 넘는 투자금을 유치했다.

국내 스타트업 기업들이 미국 크라우드펀딩 시장에서 잇달아 자금 유치에 성공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크라우드펀딩 시장을 적극 육성한다는 정부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며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크라우드 펀딩이란 예비창업가가 온라인 펀딩 업체를 통해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금융당국이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해 크라우드펀딩을 키우겠다며 각종 청사진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 관련 법안은 국회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미국 유럽에 이어 일본도 지난해 5월 관련법을 통과시키는 등 ‘속도전’이 한창이어서 크라우드펀딩을 통한 창업생태계 조성 경쟁에서 한국만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금융당국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013년 6월에 신동우 새누리당 의원은 크라우드펀딩 관련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또 같은 해 9월에 금융위원회는 이 개정안 제출을 계기로 ‘온라인소액투자중개업자’ 제도를 도입한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그러나 이 법안은 1년 6개월 넘게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

금융당국도 답답한 표정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회가 신용정보 유출, 세월호 등 대형 이슈에 매달리면서 의원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특별한 쟁점이 없는데도 대통령이 강조하는 ‘창조경제’와 관련된 법안이다 보니 야당 의원들이 ‘쉽게 통과시켜줄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적인 판단이 법안 통과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느긋한 국회와 달리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크라우드펀딩이 기업 성장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미국의 가상현실 기기 생산업체 오큘러스VR가 대표적 사례다. 이 회사는 2012년 온라인 크라우드펀딩업체에서 240만 달러를 투자받아 본격 성장하기 시작해 2014년 3월 페이스북에 23억 달러에 인수됐다.

반면 국내에서는 관련 제도가 도입되지 않아 한국 스타트업 기업들도 해외 크라우드펀딩 업체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남민우 한국벤처협회장은 “여러 차례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크라우드펀딩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법안 통과가 늦어져 안타깝다”라며 “크라우드펀딩은 인지도가 낮고 자본이 부족한 스타트업들에게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금융위는 1월 임시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국회를 설득할 계획이다. 법이 통과 되는 대로 바로 크라우드펀딩 제도가 시행될 수 있도록 하위 법령도 정비할 방침이다.

한편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죽기 살기(죽어도 기술금융, 살아도 기술금융)’를 외치고 있지만 기술금융 관련 법안도 국회에 발이 묶여 있다. 기술금융 활성화를 위해 회계, 특허법인이 기술신용평가(TCB)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하는 법안과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신용정보법 등 6개 법률개정안도 임시국회를 기다리고 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스타트업#직토#크라우드펀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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