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 달러 - 미술품으로 뭉칫돈 몰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재테크 트렌드 ‘불리기 → 지키기’ 이동

50대 개인사업가 김모 씨는 지난달 초 은행에서 100g짜리 골드바 1억 원어치를 사들였다. 은행 예금금리가 1%에 불과해 은행에 맡기는 것도 마뜩잖은 데다 금융실명법 개정으로 차명계좌를 실명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김 씨는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어렵고 ‘사 두면 언젠가 오르겠지’ 하는 생각에 예금을 금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자산가들의 재테크 트렌드가 ‘돈 불리기’에서 ‘돈 지키기’로 바뀌고 있다. 지난달 차명(借名)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금융실명제 개정안이 시행되고, 유가 폭락과 러시아 경제위기까지 겹치자 자산을 가능한 한 현금으로 바꾸고 눈치 보기에 들어간 것이다. 이에 따라 귀금속, 미술품 등 현물 자산시장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 예금 대신 금·현찰로 뭉칫돈 이동

환금성이 좋고 자녀에게 양도가 편한 골드바에 대한 자산가들의 관심이 높다. 최근 금값이 바닥을 쳤다는 인식이 퍼지며 한번에 수억 원씩 골드바를 구입하는 투자자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관석 신한은행 자산관리솔루션부 팀장은 “1온스당 1900달러를 넘었던 금 가격이 최근 1200달러까지 떨어졌다”며 “한번에 5억 원, 10억 원씩 골드바를 사겠다고 문의해 오는 고객이 부쩍 많아졌다”고 말했다.

각 은행들도 골드바를 판매하는 영업점을 확대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8월부터, 국민은행은 이달부터 전 영업점에서 골드바를 판매하고 있다. 약 5000만 원인 1kg짜리 골드바와 함께 100g, 37.5g, 10g 등 비교적 소액으로 구입할 수 있는 골드바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극단적 안전자산인 현금을 찾는 발길도 꾸준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만 원권 발행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50조 원을 돌파했지만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5만 원권 환수율은 27.3%로, 지난해 같은 기간(49.8%)의 절반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었다. 시중에 풀린 고액 현금이 흐르지 않고 어디엔가 쌓이고 있다는 의미다. 달러 수요도 늘고 있다. 50대 자산가 이모 씨는 “달러화 강세라고 해서 예금을 100달러짜리 신권으로 바꿔 두려고 은행에 갔더니 ‘찾는 사람이 많아 구하기 어렵다’고 하더라”고 했다.

○ ‘불리기’에서 ‘지키기’로 돌아선 자산가들

미술품 시장에도 뭉칫돈이 흘러들고 있다. 자산가들의 구매 열기로 올해 하반기부터 경매회사들의 낙찰금액이 급증하고 있다. 서울옥션에 따르면 상반기에 실시된 131회(3월)와 132회(6월)의 경매총액은 각각 41억 원, 47억 원이었지만 하반기 들어 133회(9월) 83억 원, 134회(12월) 73억 원으로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최성환 유화증권 연구원은 “눈에 잘 띄는 은행예금 대신 세금을 피할 수 있는 자산에 대한 선호가 뚜렷해지면서 지난해와 비교해 국내 미술시장이 급속도로 회복되고 있다”며 “한국 미술품이 저평가돼 있고 정부가 ‘미술 진흥 중장기 계획’을 발표하는 등 향후 국내 미술품 시장은 고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원금보장형을 중심으로 보수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삼성SDS, 제일모직 공모주 청약 등 확실히 돈이 될 때 부동자금이 잠시 들썩였다가 금방 수면 아래로 숨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장영준 대신증권 압구정 부지점장은 “자산가들이 정부 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고 글로벌 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리스크 관리에 치중하고 있다”며 “한때 인기를 끌던 주가연계증권(ELS) 등 ‘중위험, 중수익’ 상품에서 원금 보장이 되는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 등으로 갈아타는 추세”라고 전했다.

김재영 redfoot@donga.com·송충현·박민우 기자
#골드바#달러#미술품#재테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