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半전세로 月75만원 내라니… 외식비-용돈 줄일 수밖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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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잠식하는 월세 불안]‘월세 시대’ 1000명 설문조사

# 직장인 노모 씨(27·경기 안양시 동안구 평촌동)는 최근 전용 50m² 아파트 월세를 10만 원 올려 60만 원을 내기로 했다. 서울 소재 대학에 합격하면서 대구에서 상경했던 노 씨는 목돈이 부족해 7년간의 서울 생활을 하면서 전세는 꿈도 꾸지 못했다. 노 씨는 “월급의 4분의 1 이상을 주거비에 쏟아붓게 돼 부담이 크다”고 한숨을 쉬었다.

# 자영업자인 김모 씨(54·서울 강남구 대치동)는 S아파트 전용면적 128m²에 전세로 살다 최근 월세 75만 원을 내기로 하고 집주인과 재계약했다. 집주인이 2년 전보다 전세금을 1억3000만 원 올려 달라고 요구해 와 월세를 내는 쪽으로 절충한 것이다. 최 씨는 “고등학생인 아이들이 이사를 반대했고, 이 동네에서 사는 게 익숙하다 보니 이사를 결정하기 쉽지 않았다”며 “외벌이인데 적잖은 돈을 월세로 쓰게 된 만큼 외식비와 용돈을 줄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김 씨가 택한 반전세(보증부 월세)도 월세주택에 포함해 관련 통계를 집계하고 있다.

4일 동아일보가 ‘월세시대에 따른 주택수요자 행태’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20대 청년층과 50대 이상이 월세시대에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나타난 이유는 다른 세대에 비해 소득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최근 결혼한 직장인 신모 씨(29)는 “신혼부부가 주로 찾는 소형주택은 이미 거의 월세로 전환된 터라 월세 부담이 큰 편”이라며 “윗세대는 전세로 자산 축적의 기회를 마련한 뒤 내 집을 마련하고도 노후대책이 걱정된다고 하는데 우리 세대는 노후대책은 아예 생각도 못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50대는 당장의 소득은 적지 않지만 길어진 노후에 대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H아파트 전용 84m² 전셋집에 사는 직장인 이모 씨(52)는 올해부터 35만 원을 월세로 내게 되자 가족들의 문화생활비 지출을 줄였다. 이 씨는 “없던 월세 부담이 생기니 노후가 더 불안해졌다”고 했다.

이렇게 월세시대가 불안해도 50대 이상 응답자 10명 중 8명 이상은 전세금을 올려주거나, 월세로 전환하거나, 같은 지역 내에서 집 크기를 줄여 이사하는 등의 방식으로 현재 거주 지역을 벗어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경제연구부 연구위원은 “이 세대는 월세를 내거나 집 크기를 줄이더라도 현재 거주지역에 계속 사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월세 전환 비율이 높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네이버의 대표 여성 커뮤니티 사이트 ‘레몬테라스’에 ‘1억5000만 원짜리 전셋집에 1억 원의 대출을 받는 것 vs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35만 원을 내는 것 중 어떤 게 나을까요?’라는 글이 올라오자 순식간에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댓글을 단 사람 중 전세를 권유하는 이들은 “월세는 결국 남 좋은 일이고, 대출은 내 돈이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 이런 식으로 월세를 내면 1억 원을 연 4.2%에 대출한 것과 같기 때문에 대출을 낀 전세 비용보다 크게 비싼 편은 아니지만 이들은 ‘인상평가’를 앞세워 월세에 대한 반감을 표출한 것이다.

이처럼 세입자들이 전세제도를 선호하는 이유는 전세주택이 내 집 마련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리서치실장은 “전세금은 목돈이 고스란히 남기 때문에 비용이 비슷해도 월세보다 선호된다”고 말했다.

월세가 늘어나는 흐름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당분간은 반전세 형태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수도권 전세아파트의 경우 보증금이 최소 2억 원 이상이기 때문에 순수 월세로 전환될 경우 월세가 수백만 원인 아파트가 적지 않을 것”이라며 “월세시대라고는 하지만 중산층이라도 순수 월세를 선택하긴 쉽지 않아 당분간 ‘반전세’가 대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월세에 대한 부담은 가계소비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행이 2011년 전월세 가격이 가계소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저소득층은 월세가 1% 오르면 소비를 0.3% 줄였다. 건산연 측은 “연립·빌라 등에 월세가 집중됐던 3년 전과 달리 최근에는 아파트도 월세 전환이 빨라지고 있다”며 “저소득층뿐 아니라 중산층의 소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현진 bright@donga.com·홍수영·김현지 기자
#월세#월세시대#반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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