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엔低 도발… 한-일 환율전쟁 치닫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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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엔 환율 6년만에 950선 붕괴… 韓-日 금융시장 명암 엇갈려

《 장기침체 국면을 탈출하기 위해 일본이 잇달아 모험적 경제정책을 감행하면서 한일 양국 금융시장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최근 일본은행(BOJ)의 기습적인 추가 양적완화의 영향으로 4일 국내 증시에서는 전날에 이어 수출주가 동반 급락한 반면에 엔화 약세의 훈풍을 탄 일본 증시는 7년 만에 장중 17,000엔 선을 넘어서며 신바람을 냈다. 원-엔 환율은 6년 2개월여 만에 100엔당 950원 선 밑으로 내려갔다. 이날 엔-달러 환율은 2007년 12월 이후 6년 11개월 만에 처음으로 장중 114엔을 넘어섰다. 》

○ 원-엔 환율 보름새 50원이상 떨어져

외환은행 고시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현재 원-엔 환율은 949.46원으로 2008년 8월 14일(949.76원) 이후 처음 950원 선 아래로 내려갔다. 지난달 17일(1003.48원) 이후 보름 만에 50원 이상 떨어진 것이다. 이날 원-엔 환율은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14엔 선을 넘나들면서 오전 한때 940원대 초반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최근 원-엔 환율이 가파르게 내려가는 것은 엔화 가치의 하락 속도를 원화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엔화 약세를 유도하기 위해 돈을 연일 찍어대고 있는 반면에 한국은 글로벌 강(强)달러(달러화 강세) 환경 속에서도 경상수지 흑자 등의 요인으로 원화 가치 하락세가 더딘 상황이다. JP모건체이스는 엔-달러 환율이 연말 115엔, 내년 3분기(7∼9월) 120엔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엔화 약세 공포가 연일 금융시장을 지배하면서 일본발 환율 전쟁이 임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은 일본과의 경합 품목이 많아 엔화 약세에 따른 피해가 가장 큰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 김용준 연구원은 “강달러로 엔화 약세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바지만 일본 정부가 그 속도를 더 높인 것”이라며 “한국, 대만 등이 엔화 약세에 맞서기 시작하면 환율을 둘러싼 각국의 갈등구도가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한국의 외환당국이 쓸 만한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원화가 강달러와 엔화 약세 사이에 끼어 있는 형국이어서 시장 개입을 하거나 통화정책을 쓰기가 애매한 상황이다. 엔화 약세에 대응하기 위해 원화 가치 하락을 무리하게 유도하다가는 자칫 외국인 자본유출 등 외환시장의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출을 감안하면 100엔당 950∼1000원 정도 환율은 유지해야 한다”며 “그나마 우리는 다른 신흥국에 비해 통화정책을 펼 여력이 상대적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엔화 약세에 대응해 추가 금리인하를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 엔화 약세 공격에 국내 증시 판도 흔들려

엔화 약세 현상이 심화되면서 기업들의 희비도 엇갈리고 있다. 코스피가 전날보다 0.91% 내린 1,935.19로 마감한 가운데 일본과 경쟁관계인 한국 수출기업들의 주가가 동반 급락하면서 시가총액 상위 기업 순위가 요동치고 있다.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일본 업계와 가격 경쟁을 하는 현대자동차는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시가총액이 34조1429억 원으로 줄어 3년 7개월 만에 코스피 시가총액 2위 자리를 내줬다. 전날 3위였던 SK하이닉스(시가총액 34조5437억 원) 주가도 하락했지만 현대차가 3% 넘게 떨어지는 등 나흘 연속 하락해 순위가 뒤집혔다.

올 들어 진행된 엔화 약세는 전체 국내 증시의 판도를 바꿔놓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하반기 들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상위 20개 종목(삼성전자 우선주 포함) 중에서 17개 종목의 순위가 바뀌었다.

자동차, 철강, 화학 등 주요 수출주의 타격이 컸다.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일본과 경쟁하는 해외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6월 말 4위였던 현대모비스는 9위로, 기아자동차는 9위에서 12위로 하락했다. 15위였던 현대중공업(13조4520억 원)은 시가총액이 7조2276억 원으로 4개월 만에 반 토막 나면서 38위로 추락했다. 반면 한국전력 신한금융지주 삼성생명 등 내수주로 분류되는 기업들의 순위는 크게 올라 대조를 보였다.

김학균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전반적으로 한국 증시가 크게 떨어지고 일본과 경합하는 종목이 급락하는 것은 일본의 양적완화에 따른 것”이라며 “글로벌 투자시장에서 일본을 ‘매수’하고 한국을 ‘매도’하는 현상이 본격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유재동 jarrett@donga.com·김재영 기자 / 도쿄=박형준 특파원
#일본#엔화#환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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