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동안 각국의 통화당국이 서로 엇갈린 정책 신호를 보냄에 따라 11일 개장한 국내 외환시장이 심하게 요동쳤다. 유럽과 일본이 기존의 통화 완화 정책을 확대시키는 반면 미국은 금리 인상을 당초 예상보다 조기에 단행할 수 있다는 전망이 흘러나오면서 글로벌 자금 흐름에 큰 변화가 오고 있다. 외환당국은 이런 현상이 향후 원고(高)엔저(低), 즉 원화 강세와 엔화 약세가 동시에 오는 상황으로 전개될 개연성이 높다고 보고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인 5일보다 11.9원 급등한 1036.1원으로 마감했다. 11일 환율은 연휴 동안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있었던 달러화 강세 요인을 한꺼번에 반영해 8원 이상 급등한 채 장을 시작한 뒤 오후 들어 상승폭을 계속 넓혔다. 반면 이날 원-엔 재정 환율은 외환은행 고시 기준 100엔당 968.32원으로 5일보다 4원 가까이 떨어졌다. 이는 2008년 8월 이후 6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원화가 달러화에 대해서는 약세를 보인 반면, 엔화에 대해서는 강세를 나타낸 것이다.
이 같은 엇갈린 환율 흐름은 최근 글로벌 통화정책이 전환기를 맞은 데 따른 것이다.
미국에서는 16, 17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조기 금리 인상에 대한 신호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며 달러화 가치가 급등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보고서는 9일(현지 시간) “투자자들이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조기 금리 인상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해 이 같은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금융시장에서는 연준이 이번 FOMC에서 ‘양적완화 종료 후 상당 기간 저금리 유지’라는 선제적 정책 안내(포워드 가이던스) 문구를 없애거나 수정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만약 이 안내 문구를 삭제한다면 미국의 금리 인상 시점이 기존에 시장이 전망한 내년 중순보다 앞당겨질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유럽은 통화완화 기조를 더욱 확대하는 양상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추석 연휴 직전인 4일 기준금리를 0.15%에서 사상 최저수준인 0.05%로 내렸다. ECB는 이와 함께 자산매입 등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곧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ECB의 전격적인 경기부양책은 연휴 기간 내내 유로화 약세 및 달러화 강세 현상을 더욱 자극하는 결과를 낳았다. 일본 역시 2분기(4∼6월) 경제성장률이 ―7.1%(연율 기준)로 악화되면서 추가 양적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의 ‘돈 풀기’ 기조가 엔화 약세를 촉발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11일 엔-달러 환율은 장중 한때 달러당 107엔대까지 올라섰다. 이는 2008년 9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 같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흐름이 중장기적으로는 원화의 나홀로 강세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의 금리 인상이라는 변수가 있지만 우리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은 다시 내려가게 될 것”이라며 “결국 원화 강세, 엔화 약세가 지속될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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