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쫓아낸 막걸리 시장, 中企 동반몰락”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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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일동막걸리’ 김남채 대표가 겪은 中企적합업종 3년

1932년부터 경기 포천시에서 3대째 ‘포천일동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는 ‘상신주가’. 전국 막걸리의 대표 브랜드라고 해도 손색없는 양조장이지만 생산 라인은 멈춰 서 있다. 막걸리 붐이 절정이던 2011년만 해도 전 직원이 ‘주 6일 근무’를 해야 했을 정도지만 지금은 일주일에 하루만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김남채 상신주가 대표(사진)는 “올해 들어 월 매출이 3년 전에 비해 10분의 1로 급감했다. 전국 막걸리 공장 800여 곳 중 상위 10곳 정도를 제외하고는 고사하기 일보 직전”이라고 전했다.

중소 막걸리 업체들의 고전에는 여러 요인이 겹쳐 있지만 막걸리 시장에서 대기업들이 빠져나간 것이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중소기업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2011년 9월에 처음 도입된 중기 적합업종제도가 거꾸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결합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한 셈이다. 막걸리 시장은 중기 적합업종제도가 ‘동반성장’이 아니라 ‘동반자살’로 이끈 대표적 사례다.

○ 판 자체가 작아진 막걸리 시장

5일 통계청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막걸리 출고량은 올해 1∼6월은 18만9430kL에 그쳤다. 2008년 14만167kL였지만 막걸리가 몸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고 일본에서도 수요가 늘면서 2010년에는 38만5740kL로 늘어났다. 2년 만에 3배 가까이로 급증한 것이다.

당시 국내 판매가 늘고 수출 전망도 밝아지자 롯데주류 샘표 농심 등 대기업들도 막걸리 사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풍부한 자금력과 다양한 판매망 등을 갖췄지만 ‘막걸리 초보’인 대기업은 오랜 막걸리 제조 노하우를 갖춘 중소 업체에 합작하자는 ‘러브콜’을 보냈다.

상신주가도 예외가 아니었다. 홍초로 유명한 식품 대기업인 ‘대상’이 먼저 접촉해왔다. 홍초와 막걸리를 섞은 ‘하트주’라는 폭탄주가 등장한 게 계기였다. 대상은 홍초를 활용한 음료를 확산시키고 상신주가는 대기업의 마케팅 역량을 활용하는 게 절실했다. 양측은 ‘홍초막걸리’로 공동 상표 등록을 하고 대상이 상신주가의 경영권은 보장하되 회사 지분을 일부 인수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하지만 곧바로 중소 막걸리 회사들에서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등의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를 기치로 내건 이명박 정부였지만 촛불시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자신감이 급격히 떨어지자 정치적 인기를 위해 ‘친서민’과 ‘대기업-중소기업 상생’으로 돌아섰다.

2010년 12월 대통령직속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했고 2011년 9월 막걸리가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다. 대상은 상신주가에서 손을 뗐고 막걸리 사업을 검토하던 대기업들도 일제히 막걸리 사업을 최소화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상생을 외치던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다”고 말했다.

○ “중소기업끼리 경쟁하면 동반자살”

롯데주류는 종합주류기업을 기치로 내걸고 소주에 이어 맥주 사업에도 뛰어들었지만 막걸리는 예외로 했다. 오리온은 ‘참살이탁주’를 인수하고 막걸리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지분을 팔아치웠다. 실제 막걸리 출고량은 막걸리가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2011년(44만3778kL) 이후 매년 줄고 있다.

김남채 상신주가 대표는 “막걸리가 한창 잘나갈 때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같이 투자해서 품질을 높이고 시장을 함께 개척했다면 시장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기 적합업종 지정으로 막걸리 시장은 동반성장이 아니라 동반자살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대기업이 막걸리 시장에 진입하지 않아 영세 업체들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가평잣막걸리’를 생산하는 우리술 박성기 대표는 “막걸리는 지역별로 다양한 술을 내놓는 게 관건”이라며 “대기업이 막걸리 시장을 주도하면 할인 공세 등으로 영세 업체 위주인 시장이 잠식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막걸리의 중기 적합업종 지정 기간은 다음 달까지로 동반위는 다음 달 막걸리를 중기 적합업종으로 재지정할지를 결정한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기 적합업종 지정, 대·중소기업 동반 상생, 대형마트 의무휴업제 같은 정책은 도입 단계에서부터 경제 논리보다 정치 논리가 앞선 경우”라며 “이런 경우에도 소비자가 받는 혜택과 피해, 대기업에 납품하는 또 다른 중소기업, 농가 입장도 반드시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 중소기업 적합업종 ::

대통령직속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대기업의 진출이 금지되거나 제한되는 업종. 2011년 9월부터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 각각 85개, 15개 등 총 100개 품목이 지정됐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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