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대전략의 시대… 변화 망설이면 끔찍한 파국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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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 100주년]현재의 기업들에 주는 교훈

도구와 기술의 발달은 변화를 요구한다. 하지만 인간의 습관과 행태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산업화’로 생산성 발전의 속도가 엄청나게 높아졌지만 대응과 변화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짧아졌다.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재앙이 발생한다. 올해로 발발 100주년을 맞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이를 증명한다. 서부전선에서만 1000만 명이 전사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은 15세에서 50세 사이의 성인 남자 중 55% 정도가 참전했고, 그중 25%가 전사했다. 유럽을 비롯한 전 인류에게 1차 대전은 끔찍한 기억과 함께 변화 대응이란 숙제도 남겼다. 1차 대전이 현대 경영자에게 주는 교훈을 탐구한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57호 스페셜 리포트의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 전술목표보다 전략목표가 중요해져


1차 대전의 가장 큰 특징은 ‘새로운 전장의 출현’이다. 전투기와 잠수함의 등장으로 전장이 하늘과 바다로 확대됐다. 전투기와 잠수함은 전략목표에 대한 정밀한 타격을 가능하게 했다. 항공기가 실제로 전장에서 위력을 갖추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지만 기존 전략과 다른 접근이 반드시 필요했다. 전술목표란 병력, 요새와 같은 직접적인 전투력을 지닌 타깃이다. 반면 전략목표는 식량, 산업시설, 국민의 전쟁의욕 같은 전투력을 지원하는 힘이다. 19세기까지는 전술목표만 효과적으로 공략하면 승리할 수 있었다. 후방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전략목표를 타격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공기와 잠수함이 이 생각을 바꿔 놨다.

이는 전쟁 수행방식에 엄청난 변화를 야기했다. 옛날에는 전투가 벌어지는 곳 옆에서 농민들이 농사를 짓거나 구경을 하는 장면도 흔했다. 농민은 약탈과 지배의 대상이기는 했지만 전술목표는 아니었다. 그러나 전략목표가 중요해지면서 적국의 모든 것이 승리를 위한 공략 대상으로 변했다. 리델 하트가 제시한 ‘간접 접근론’ 역시 직접적인 공격 목표 이외에 가능한 모든 것에 접근해 타격을 준다는 측면에서 ‘대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민간부문에도 분명한 영향을 남겼다. 오늘날 마케팅 홍보, 상품개발 전략을 돌아보면 대전략적 접근, 간접접근으로 성공한 사례가 많다. 전선은 하늘과 해저뿐 아니라 시간과 사람들의 마음속, 잠재의식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됐다. 그런 점에서 1차 대전은 현대적 전략의 시작이었다.

○ 리더십과 인간의 재발견

1차 대전을 끔찍한 살육전으로 만든 비밀 병기는 기관총이었다. 1차 대전의 상징인 ‘참호전’에서 기관총은 상상 이상의 위력을 발휘했다. 한 영국군 병사는 “참호에서 나와 돌격한 지 15분 만에 어디선가 기관총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중대가 전멸했다”고 증언했다. 그때 건너편에 있던 독일군 기관총 사수의 증언은 더 충격적이다. 그가 방아쇠를 당긴 시간은 5분이었다. 2인 1조 2대의 기관총이 교차사격으로 상대국 중대를 전멸시켰다.

사실 한 명의 병사가 수십 명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미국 남북전쟁에서 증명됐다. 남북전쟁을 참관했던 유럽 장교들은 밀집대형으로 서서 전진하는 병사들이 신형 소총과 강철대포에 몰살당하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즉시 본국에 “서서 싸우는 전술을 폐기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전술은 변함이 없었다. 단지 밀집대형만은 포기했는데 그것마저 고수했다면 더이상 싸울 병사들이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유럽 각국이 서서 싸우는 방식을 버리지 못한 이유는 장교들의 귀족적 태도와 비용 문제 때문이었다. 낮은 포복과 높은 포복으로 산개해서 싸우는 현대 각개전투의 방식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장교와 하사관 그리고 병사 모두가 형제 같은 유대감을 가져야 했다. 병사들 스스로 전술의 주체라는 자각도 있어야 했다. 그러나 1차 대전까지도 장교들은 장교와 사병의 관계를 귀족과 평민의 관계로 착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참상을 겪고서야 세계 각국은 병영제도를 도입해 유대감을 강화했고 그에 해당하는 군사비 지출을 감내했다. “병사들은 애국심이나 전우애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형님 같은 중대장에 대한 의리 때문에 싸운다”는 말이 있다. 병영체제는 ‘귀족 리더십’을 ‘형님 리더십’으로 바꿨다. 병사들은 전투의 소모품, 전투기계가 아니라 주체가 됐다.

○ 자기주도적이고 창의적으로 변해야

1차 대전은 현대의 무기와 19세기 전술, 기병대, 귀족과 신분제가 공존한 전쟁이었다. 그 괴리가 ‘진흙 참호 속의 아마겟돈’을 낳았다. 그러나 그 악몽 속에서 인간은 20세기와 현대 문명을 제어할 수 있는 계시도 찾아냈다. 첫 번째 교훈은 ‘변화’다. 1차 대전은 변화를 낯설어하고, 변화를 망설이면 어떤 파국이 오는지 보여준 가장 명백한 사례였다.

두 번째 계시는 ‘현대적인 변화의 조건’과 관련한 것이다. 어느 시대나 변화를 선도하는 지휘관은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1차 대전이 요구하는 전술적 변화는 이전의 변화와는 차원이 달랐다. 종전이 다 돼서야 참호전은 각개전투에 기초한 전술운용으로만 돌파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각개전투를 위해서는 병사 한 명 한 명이 전투의 주역이자 주인이 되는 군대와 훈련방식이 필요했다. 기계의 발달이 오히려 병사를 ‘전투기계’에서 ‘진짜 인간’으로 만들었다.

기계 문명에서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기주도적이고 창의적으로 변해야 한다. 이것이 1차 대전이 남긴 위대한 화두였다. 1차 대전을 통해 인류는 ‘자동제어식 생산라인에 앉혀놓는 방식’이나, 정반대로 ‘우아하고 편안한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만으로 인간의 능력을 끌어낼 수 없고 발전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병사를 만드는 방법은 전투 구역을 획정해주고 그 안에서 창의와 도전을 최대한 허용하는 것이다. 개미처럼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영역을 지닌 사자처럼 생존하고 싸우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21세기 기업들에 1차 대전의 경험은 다시 한 번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조직원들은 ‘업무 기계’인지 아니면 ‘진짜 인간’으로 창의력을 발휘하며 경제전쟁을 수행하고 있는지.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yhkmyy@hanmail.net

정리=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1차 세계대전#전술목표#전략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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