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쇼핑을 알아?”스마트 소비 즐거움 과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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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發 유통혁명]<중>그들은 왜 ‘바이슈머’가 됐나

해외 직구 경험자들의 집단 인터뷰 모습. 직구를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오혜진 이승연 서호성 씨, 본보 한우신 기자, 김민욱 정소미 씨.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해외 직구 경험자들의 집단 인터뷰 모습. 직구를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오혜진 이승연 서호성 씨, 본보 한우신 기자, 김민욱 정소미 씨.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임유미 씨(28·여)는 2년 전 ‘아이허브’라는 해외 온라인 쇼핑 사이트를 통해 비타민을 구입했다. 임 씨의 첫 해외 직구였다. 국내 가격의 3분의 1이면 같은 제품을 살 수 있는 데 끌렸다. 배송비를 내더라도 이득이었다. 이 사이트에는 한국에서 살 수 없는 제품도 많았다. 이후에도 임 씨는 수시로 이 사이트에 들어가 상품을 구입하고 있다. 비타민 이외에도 말린 과일이나 잼 등 식품도 많이 산다.

비타민은 ‘해외 직구의 시작’으로 불린다. 비타민 같은 건강보조식품의 국내 가격이 해외보다 서너 배 이상 비싸기 때문. 또한 국내에서는 구매가 가능한 건강보조식품의 종류가 많지 않다. 임 씨가 애용하는 사이트는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할인 기간이 되면 주부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관련 정보가 많이 올라온다. 정소미 씨(39·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아이허브 프로모션 기간입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은 것을 본 적도 있다”며 “이미 아파트 주부 사이에 알음알음 직구가 대중화됐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해외 직구를 처음 접한 뒤 그 매력에 푹 빠진 소비자가 많다. 이들은 단순히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마치 바이어처럼 행동한다고 해 바이슈머(Buyer+Consumer)라는 이름이 붙었다. 본보는 그들이 해외 직구에 푹 빠지는 이유를 분석하기 위해 강문영 KAIST 경영대 교수와 함께 직구 경험이 있는 소비자 10명을 인터뷰했다. 5명은 집단 인터뷰를 진행했고 나머지 5명은 각각 따로 만났다.

○ 저렴한 가격에 눈뜨고 희소 상품에 끌려

임 씨를 비롯해 인터뷰에 임한 사람들은 대부분 해외 직구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저렴한 가격’을 첫 번째로 꼽았다. 이승연 씨(37·여)는 3년 전 해외 사이트에서 향초의 개당 가격이 국내보다 2만∼3만 원 싼 걸 보고 구입했다. 이후 이 씨는 사이트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국내보다 싼 제품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최인우 씨(29)는 2012년 국내에서 50만 원 안팎의 전자제품을 미국에선 100달러대에 구입할 수 있는 걸 알았다. 최 씨는 “미국 전자제품의 경우 변압기를 사용해야 하는 불편도 있지만 가격의 이점을 생각하면 그 정도 불편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해외 쇼핑몰에서 세일을 할 때면 직구족들의 손과 눈은 바빠진다. 평소에도 해외 직구 가격이 20∼30% 싸다. 여기에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11월 말부터 시작되는 미국 최대의 쇼핑 시즌)처럼 70∼80%씩 세일을 하면 가격 차는 더 벌어진다. 이런 시기에 새로 직구에 입문하는 사람이 많다.

가격 외에도 소비자를 유인하는 것은 국내에선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상품을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주변 사람들이 갖지 못한 제품을 살 수 있는 것. 오철수 씨(29)는 24개월 된 아기의 옷과 자동차 세차 용품을 직구로 산다. 오 씨는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내가 가지고 있는 데서 오는 뿌듯함이 크다”고 말했다. 이러한 자기만족은 더 희소성 있는 상품을 찾게 만든다. 기본적으로 국내 유통 시장이 작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 ‘내가 똑똑한 소비자’ 과시 욕구도 반영

직구가 빠르게 확산되는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직구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주부 커뮤니티에서는 직구로 물건을 사는 과정을 중계하는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상품 종류를 캡처한 화면, 주문과 결제를 마친 화면, 그리고 최종적으로 상품을 받은 뒤의 인증샷을 올리는 식이다. 이런 내용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서도 널리 퍼지고 있다. 강문영 교수는 “사람들이 해외 직구 과정을 공유하는 데에는 정보를 나누는 것 이외에도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숨어 있다”며 “내가 얼마나 똑똑한 소비자인지 알리고 싶어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런 경향은 취재 과정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에게서 확인됐다. 오혜진 씨(28·여)는 “예전에 스타벅스가 처음 생겼을 때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 마시는 사진을 올리는 것처럼, 누군가 SNS에 직구에 성공한 사진을 올리면 나도 빨리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직구를 잘하면 영어를 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뭔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민욱 씨(35)는 “저렴하고 좋은 물건을 어렵게 찾아 사고 나면 ‘이걸 안 하는 사람들은 쇼핑을 몰라’ 하는 식의 만족을 느끼기도 한다”고 했다. 단순히 수동적인 소비에 그치지 않고 직접 유통의 중간 단계에 들어간다는 데 만족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윤세은 씨(24·여)는 “국내보다 더 큰 시장에 나가서 상품을 찾으면서 소비자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전했다.

해외 직구가 저렴하고 좋은 상품을 찾는 합리적인 소비에서 벗어난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직구를 하나의 오락처럼 여기면서 과소비로 이어지기도 한다. 싼 가격에 혹해 필요하지도 않은 상품을 사는 바람에 소비의 총량이 늘어나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직구에 따르는 위험도 감수한다. 해외 직구 경험자 대부분이 직구에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다. 주문한 상품을 석 달 지나서야 배송 받는가 하면 옷 치수가 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럴 때 해외 쇼핑몰에서 반품을 받기는 상대적으로 어렵다. 강 교수는 “소비자들은 실수와 실패한 경험보다는 자신의 노력과 성공 경험만을 기억하며 스스로 ‘합리적인 해외 직구’를 하고 있다고 여긴다”고 풀이했다.

:: 바이슈머(Buysumer) ::

바이어(Buyer)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 인터넷 등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과거엔 수입상, 도매상 등 바이어가 하던 해외 구매, 신제품 수입을 소비자가 직접 담당하면서 생겨난 신조어.

한우신 hanwshin@donga.com·권기범 기자
#해외 직구#바이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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