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둘이 벌어도 ‘턱걸이 중산층’… 맞벌이의 역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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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엄마들은 남보다 앞서기 위해 일하는 게 아니다. 다른 가정과 걷는 속도를 맞추거나 단지 뒤처지지 않으려면 일하지 않을 수 없다. ―맞벌이의 함정: 중산층 가정의 위기와 그 대책(엘리자베스 워런 등·필맥·2004년) 》

엄마들이 집에 머물던 시절이 있었다. 결혼하면 일을 관두는 게 보통이었다. 남편이 실직해 당장 생계가 막막해진 게 아니면 일터로 나오지 않았다. 불과 한 세대 전 일이다. 이제 엄마들은 결혼, 출산 뒤에도 일터에 머문다. 오늘의 맞벌이 가정은 1970년대 외벌이 가정보다 분명히 소득이 늘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손에 쥐는 여윳돈이 없다.

저자(미국 상원의원)는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를 지낸 파산법 전문가다. 교수 시절 ‘소비자 파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파산한 2220명을 인터뷰했다. 그 결과 이들의 대부분은 신용카드를 긁어댄 청년도, 기댈 데 없이 곤궁한 노인도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최악의 재정난에 처한 이들은 놀랍게도 자녀가 있는 맞벌이 가정이었다.

혼자 버는 가정은 한 사람의 소득에 맞춰 지출계획을 세운다. 이론상 맞벌이 가정도 한 사람의 월급만 쓰고 다른 사람의 월급은 통장에 묻어둘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저자는 엄마가 벌어온 추가 소득은 아들, 딸에게 ‘더 나은 기회’를 마련해주는 데 투입됐다고 지적한다. 장기 모기지론을 받아 좋은 학군 지역에 내 집을 사는 데 썼다는 것이다.

한국도 닮은꼴이다. 엄마들이 우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떼어놓고 회사로 출근하는 게 자아실현의 욕구 때문만일까. 맞벌이를 해야 겨우 주택담보대출금을 갚으며 아이를 학원에 보낼 수 있다. 중산층 생활에 가까스로 턱걸이라도 하려고 엄마들은 매일 일터로 간다.

맞벌이 가정이 재정 위기에 취약하다고 다시 엄마가 집에 들어앉을 수도 없다. 그건 중산층 생활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저자는 ‘재정 소방훈련’을 제안한다. “한쪽 소득 없이 살아갈 수 있는가” “고정비용을 줄일 수 있는가”에 답을 준비하란 얘기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중산층#맞벌이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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