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억 대출 사기 왜 몰랐나… 이름 달라 은행 검사 교묘히 속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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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협력사들 SPC 10개 만들어 서류세탁
가짜 매출채권 담보 돌려막기 사기대출

KT 자회사인 KT ENS 직원과 협력업체들이 3000억 원대의 황당한 대출 사기를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페이퍼컴퍼니)인 자산유동화회사(SPC)를 동원해 대출 구조의 허점을 교묘히 파고들었기 때문으로 파악됐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 대출 사기에 연루된 휴대전화 단말기 공급업체 N사 등 협력업체 6곳은 자산 규모 100억 원도 채 안 되는 중소업체에 불과하다. 이 중 한두 곳은 실체가 없는 페이퍼컴퍼니라고 알려졌다.

이런 중소업체들이 3000억 원대의 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대출을 받은 곳이 실제 업체가 아닌 서로 다른 이름의 SPC였기 때문이다. 협력업체들은 10개나 되는 SPC를 만들었고 KT ENS에 물건을 납품하고 발생한 것처럼 꾸민 매출채권을 SPC에 모두 넘겼다. SPC들은 2008년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넘겨받은 매출채권을 3개 시중은행과 14개 저축은행에 담보로 제공하고 대출을 받아갔다.

또 SPC 한 곳에서 대출이 만기가 되면 다른 SPC를 통해 대출받아 상환하는 수법으로 ‘돌려 막기’를 해 연체를 피해갔다. SPC를 통한 대출은 실제 대출받은 회사의 재무제표에 부채로도 잡히지 않아 협력업체들은 은행 검사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금융감독원이 추산한 피해 규모가 당초 2800억 원에서 3000억 원으로 늘어난 것도 조사 과정에서 이들이 만든 SPC가 추가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추후 조사 결과 대출에 이용된 SPC가 더 밝혀질 경우 대출 사기 피해금액은 더 늘어날 수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출 은행들은 SPC를 통한 매출채권 담보대출에서 매출채권 상환 채무자의 신용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며 “이번 대출에서는 KT ENS의 신용도를 따졌을 테고 KT 자회사라는 점을 감안해 대출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KT ENS는 부채비율이 300%를 넘는데도 지난해 신용등급 A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 또 다른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해 6월 KT ENS의 전신인 KT네트웍스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평가해 A등급(안정적)을 부여했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KT의 100% 자회사로서 계열사 지원 가능성을 감안해 그런 등급을 매겼을 것”이라며 “모회사나 계열사의 지원 가능성을 배제하고 개별 회사의 독자적인 재무 상태와 사업 능력만을 따져 신용등급을 매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KT ENS 직원이 사기 대출에 이용한 법인 인감이 ‘진짜’임을 재차 확인하고 검사 인력을 추가 투입해 사기 대출 발생 경위와 책임 여부를 파악하고 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KT#대출사기#SPC#매출채권#사기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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