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쇼핑리스트서 밀려난 남성복… 아빠는 서럽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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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심리 여전히 한겨울

장면 1. 이달 5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4층 남성 의류관. 정장과 셔츠 타이를 판매하는 브랜드들이 ‘20∼30% OFF’라는 안내문을 내걸고 있었지만 고객의 발길이 뜸했다. 같은 백화점 5층과 지하 1층의 식당가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비는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장면 2. 이달 7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9층 행사장은 여성 의류를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여성 의류 브랜드인 지고트와 미니멈, 시슬리 등 60여 개가 겨울 의류 500개 품목을 최대 70% 할인해 판매하는 것. 백화점이 2일부터 이날까지 판매한 물량은 모두 20억 원어치. 당초 예상보다 15%가량 많은 수준이다. 전 세계 40개 도시를 여행하는 5000만 원 상당의 크루즈 여행권을 증정하는 경품을 내건 것이 주효했다. 김상수 롯데백화점 마케팅전략팀장은 “할인 폭을 높이거나 파격적인 혜택을 내걸지 않으면 고객이 지갑을 잘 열지 않는다”고 전했다.

새해가 시작됐지만 소비가 본격적으로 회복될 조짐이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유통업체들은 구매 고객에게 여행 상품권 지급이나 주차 대행 서비스 확대 등 파격적인 혜택을 내거는 등 소비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달 2일 일제히 신년 세일에 돌입한 주요 백화점들은 성적표상으로는 선방했다. 롯데백화점은 2일 시작한 세일의 4일간 매출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3.7% 늘었다. 같은 기간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은 매출액이 각각 2.5%, 4.5% 증가했다.

유통업계는 그나마 백화점들이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해 선전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신년 세일에는 사은품을 지급하지 않고 가격만 할인한다는 ‘세일의 불문율’을 깼다. 가구와 모피 등을 200만 원 이상 구매한 고객에게는 10만 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을 주고 사은품 물량도 지난해보다 30%나 늘렸다. 롯데백화점도 가구 등 일부 품목은 통상 세일 기간의 후반기에 제공하던 캐시백(일정 금액 이상 구매하면 현금으로 되돌려 주는 혜택)을 세일 시작 초기부터 제공하고 나섰다.

전문가들은 대표적인 불황 지표인 남성 정장의 매출이 여전히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롯데백화점에서 남성 정장 매출액은 전년보다 2.9%나 줄었다. 2012년(―1.3%)보다 감소 폭이 더 커졌다. 남성 정장 매출 증가율은 2010년 5.9% 성장을 기록했다가 2011년 5.6%로 떨어지기 시작한 이후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대형 마트에서도 고객 씀씀이가 줄고 있다. 이마트에서 고객들이 한 번 방문할 때마다 지출하는 금액(객단가)은 지난달 4만8750원으로 전년 동기(5만60원)보다 1310원 줄었다. 매출 역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4% 감소했다. 통상 12월에는 크리스마스 등으로 연말 특수를 누렸지만 지난해 말에는 불황 등으로 매출액이 예상보다 저조했다는 분석이다.

소비자들은 대형 마트에서 꼭 필요한 물건만 사는 추세다. 지난해 1∼11월 이마트에서 일반 흰 우유 매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0% 늘었지만 가공 우유나 강화 우유처럼 부가 기능이 있는 우유의 매출액은 17.7% 감소했다. 같은 기간 세제의 경우 섬유유연제와 표백제의 매출이 각각 14.3%, 10.0%씩 줄어들었다. 새해 들어서도 이런 추세는 이어지고 있다. 이달 2일부터 7일까지 이마트와 홈플러스의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각각 3.4%, 6.2% 줄었다.

하지만 부유층을 중심으로 소비 심리가 살아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온다.

이번 백화점 신년 세일에서 단가가 높은 해외 패션·잡화 매출액의 경우 롯데백화점(32.6%)과 현대백화점(21.5%), 신세계백화점(27.2%) 등 3사 모두 일제히 올랐다. 와인 수입 업체인 나라셀라도 초고가 와인에 대한 수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올해 설 선물세트에서 처음으로 300만 원 이상의 와인을 선보였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부유층의 소비 여력은 여전히 충분하지만 가계부채가 1000조 원을 돌파하는 등 중산층의 소비 여력이 줄어들고 있는 게 문제”라며 “내수 회복 여부는 중산층의 소비 심리를 어떻게 개선시킬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김유영 abc@donga.com·류원식 기자
#소비심리#쇼핑리스트#남성복#가계부채#중산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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