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신입사원이 사라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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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7월 취업자 연령 분석해봤더니

올해 1∼7월 취업자 연령 분석해봤더니

회사에서 20대가 사라지고 있다. 대졸 신입사원의 고령화 현상이 심화하면서 기업 내 20대의 비중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동아일보가 1일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함께 지난해와 올해 1∼7월 기업 신입사원 채용에 지원한 4년제 대학 졸업 및 졸업예정자를 연령별로 분류한 결과 만 30세 이상은 14만1214명에서 18만5001명으로 1년 새 31.0%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김세영 인크루트 연구원은 “비교 대상 시기의 전체 채용인원 차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들어 30대 지원자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취업난을 피해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기 위해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늙은 신입사원’이 되는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늙은 신입사원들

전체 신입사원의 평균 나이도 껑충 뛰었다. 인크루트가 4년제 대학 출신 직장인들의 이력서 3만7000건을 분석한 결과 1998년 25.1세이던 신입사원 평균 연령은 2008년 27.3세로 2.2세 높아졌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상반기(1∼6월) 근로자 100인 이상 주요 기업의 대졸 신입사원 평균 나이를 조사한 결과는 남성 33.2세, 여성 28.6세로 이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신입사원 고령화 현상은 취업 준비 때문에 대학을 오래 다니는 ‘취업 장수생’이 많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동아일보와 인크루트가 국내 기업 인사담당자 235명에게 신입사원 고령화 현상의 원인을 물은 결과 ‘치열한 경쟁으로 구직이 어려워져서’(55.7%) ‘의미 없는 휴학과 복학의 반복 때문에’(20.0%) ‘스펙 쌓기에 시간을 많이 보내서’(17.9%) 등으로 대답했다. 최근 입사한 대졸 직장인 1186명의 30.1%는 ‘졸업을 연기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 그 이유로는 ‘취업이 늦어져서’(30.0%)를 가장 많이 꼽았다.

SK그룹 인사팀 관계자는 “최근 면접에 들어갔다가 고령 지원자가 크게 늘어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실제로 나이 많은 신입사원이 적지 않기 때문에 대리급 직원들에게도 말을 함부로 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실력과 나이 사이

기업들은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성별은 물론이고 나이를 이유로 차별할 수 없다. 그러나 나이 든 신입사원을 꺼리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조직 내에서 제대로 융합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취업 준비생들은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취업시장에 뛰어들기 전에 좀 더 준비하기 위해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자격증을 따느라 시간을 투자했는데 불이익을 받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04년 K대에 입학한 김모 씨(28·여)는 2011년 졸업했지만 취업에 연거푸 실패해 지금도 학교 도서관으로 출근한다. 김 씨는 “학교 다닐 때는 바닥 친 학점을 메우는 데 1년을 썼고 졸업 후에는 토익 950점을 만드느라 1년을 더 썼다”며 “이제는 입사할 준비가 된 것 같은데 정작 회사들은 뭐가 못마땅한지 서류전형에서 바로 떨어뜨리는 곳도 있다. 운 좋게 면접까지 가도 항상 ‘이 나이까지 뭐 했냐’란 질문부터 한다”고 전했다.

김 씨의 사례처럼 많은 기업은 아직까지 ‘늙은 신입사원’을 받아들일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 설문조사에서 인사담당자들이 꼽은 적정 신입사원의 나이는 남자 28.4세, 여자 25.5세였다.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법에 연령차별 제한 조항이 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채용 시즌마다 공문을 보내 나이 차별에 유의해 달라고 강조하지만 기업으로선 조직 구조상 20대 중후반의 신입사원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덩달아 늙는 기업


인사담당자의 56.2%는 “신입사원 고령화로 선후배 간 대화 단절, 호칭의 애매함 등 새로 나타나는 문제가 있다”면서도 80.0%는 “아무런 대책이나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기업들은 ‘선후배 간 소통 분위기 강화’(42.6%) ‘신입사원을 대하는 예의 교육 강화’(23.4%) ‘사내 반말 금지’(10.6%) ‘직급 없는 조직 만들기’(8.5%) 등을 들었다.

신입사원의 고령화는 결과적으로 기업 전체의 고령화를 부른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5인 이상 기업의 연령대별 근로자 수를 분석한 결과 1980년에는 20대 60.6%, 30대 23.7%, 40대 이상 15.8%로 전형적인 피라미드 구조였다. 그런데 2004년 20대 27.5%, 30대 33.0%, 40대 이상 39.5%의 역(逆)피라미드 형태로 바뀌었다. 이 같은 현상은 갈수록 심화돼 지난해에는 20대가 19.9%에 그쳐 처음으로 20% 아래로 떨어졌다. 반면 40대 이상은 47.6%로 절반 가까이 됐다.

김동욱 경총 기획홍보본부장은 “과거 한국 사회가 고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젊은 인재들의 활약이었다”며 “정력적으로 일할 나이인 20대 근로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결국 기업의 활력이 사라지고 생산성도 낮아질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신입사원 평균 연령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권태희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박사)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이 극명하게 양분되면서 반드시 안정적인 대기업에 들어가겠다는 인식이 젊은이 사이에 퍼져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시장이 워낙 경직된 탓에 ‘첫 단추부터 잘 끼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대기업만 바라보니 취업이 늦어지면서 연령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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