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호암, 시대 흐름 읽는 천부적 재능으로 미래 꿰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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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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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중략) 기업은 누가 뭐라고 해도 그 시대의 여건과 상황에 맞는 업종을 선택해서 합리적으로 경영을 해야 한다.”

1980년 봄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1910∼1987년)는 일본의 경제계획을 담당했던 이나바 히데조(稻葉秀三) 박사를 만났다. 이나바 박사는 일본이 1973년 오일 쇼크 이후 정책을 전환해 제철, 조선, 석유화학 등 기간산업의 생산 규모를 대폭 억제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 과잉 생산으로 많은 기업이 도산했고 대외적으로는 덤핑 수출로 국제 무역마찰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이나바 박사는 “그 대신 반도체, 컴퓨터, 신소재, 광통신 등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기술 분야를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그 결과 수출은 늘고 외화 수입이 급증했다. 일본의 살길은 경박단소(輕薄短小)의 첨단기술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경박단소는 가볍고 얇고 짧으며 작은 제품을 말한다.

조선과 제철 등 중후장대(重厚長大)한 중화학공업 대신 첨단산업 육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호암은 무릎을 쳤다. 호암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야는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 사업이었다. 반도체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풀기 쉽지 않은 문제가 산적해 있었지만 호암은 특유의 스피드로 사업을 진행했다. 1982년 반도체·컴퓨터사업팀을 꾸렸고 1983년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 투자한다고 공식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1984년 5월 경기 용인시 기흥에 첫 반도체 공장을 세웠다.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 것이다.

요즘 삼성전자의 실적을 이끌고 있는 제품은 스마트폰이다. 하지만 사실 삼성전자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의 부품부터 TV, 가전, 스마트폰의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삼성전자의 튼튼한 기초를 호암은 인생의 황혼기인 70대에 단 5년 만에 확립한 셈이다. 이는 반도체 산업의 시대적 필요성을 절실하게 깨닫지 않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호암은 시대의 흐름을 아는 경영자였다. 삼성은 광복 후와 6·25전쟁 중 무역으로 물자를 조달했고 전후에는 설탕과 같은 수입 대체 산업에 손을 대 자립경제의 틀을 만들었다. 이후에는 중화학공업에 투자하며 기간산업 기반 조성에 힘썼다. 그리고 1980년대에는 최첨단 산업인 반도체 사업의 기반을 마련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005년 내놓은 ‘한국기업 성장 50년의 재조명’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들은 기반형성기(1955∼1970년), 고도성장기(1971∼1987년), 전환기(1988∼1997년), 재도약기(1998∼2005년)를 거쳤다. 삼성은 각각의 시기마다 꼭 필요했던 사업을 하는 주력 기업을 가지고 있었다. 삼백산업(제품이 흰색을 띠는 밀가루, 설탕, 면직물 산업을 의미)이 부상했던 기반형성기에는 제일제당이, 종합상사와 건설사가 대표기업이던 고도성장기에는 삼성물산이, 전자와 자동차 산업이 대표업종이던 전환기 이후에는 삼성전자가 그룹의 대표 주자였다. 모두 호암이 필요성을 느끼고 남보다 한발 앞서 세운 기업이다.

1965년 국내 매출액 100대 기업 중 2000년대 중반까지 살아남은 기업은 12개에 불과하다. 1900년 미국의 상장회사 가운데 남아 있는 기업은 GE뿐이다. 환경의 패러다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살아남지 못한다. 1938년 삼성상회라는 가게로 시작한 삼성은 호암의 시대적 흐름을 읽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튼튼한 기반을 다졌다.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경영저널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24호(2013년 3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특허 괴물’을 우군 만드는 법

▼ 스페셜 리포트


고 스티브 잡스(1955∼2011)가 최고경영자(CEO)로 재직하며 최고의 혁신 기업으로 명성을 날리던 시절, 애플의 가장 소중한 자산은 사옥이나 공장, 자본과 같은 눈에 보이는 유형 자산이 아니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기술, 브랜드, 조직 문화, 고객 경험을 중시하는 철학 등이 훨씬 더 중요했다. 어떤 회계 전문가는 기업 가치의 70% 이상이 대차대조표에 나오지 않는 무형 자산에 의해 결정된다고 분석했다. 기업 인수합병(M&A)의 주된 목적도 유형 자산보다는 고객관계나 기술, 브랜드 등 무형 자산 취득과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에서는 대표적 무형 자산인 지식자산의 확보 및 유지를 위한 다양한 전략 대안을 제시했다. 특허 분쟁에 대처하는 법, ‘특허 괴물’을 우군으로 만드는 법도 소개한다.


회사 키우는 ‘기회 관리의 원칙’

▼ MIT슬론매니지먼트리뷰


좋은 제품과 기술을 보유했다고 해서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2000년에 설립된 기업 4만4000여 곳을 조사했다. 그랬더니 창업 10년차인 2010년에 1000만 달러 이상의 연매출을 기록한 곳은 6% 미만이고, 5000만 달러 이상을 기록한 곳은 2%도 채 되지 않았다. 신생 기업의 규모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조직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영업, 행정 비용이 빠르게 증가한다. 그래서 많은 중소기업이 규모를 키울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런 문제는 기업의 핵심 고객을 새롭게 정의하여 영업 생산성을 올리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2000년 설립된 비즈니스프로세싱코라는 기업의 사례를 통해 영업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비즈니스 규모를 키우는 기회 관리의 원칙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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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호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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