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경영 지혜]현대차 10년 보증제는 ‘품질 자신’ 시그널링 전략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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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주택가에 높은 담장에 첨단 경비시설을 갖춘 집이 많다. 담장이 높으면 침입하기 어렵다. 또 감시카메라와 경보장치는 들어온 도둑을 빨리 잡도록 도와준다. 그런데 담장을 높이고 각종 보안 장치를 마련하면 또 다른 효과도 볼 수 있다. 애초에 도둑이 아예 그 집을 넘볼 생각조차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도둑들에게 침입하면 금방 잡히고 말 것이란 신호(시그널)를 보낼 수 있다. 이른바 ‘시그널링(신호 주기)’ 효과다.

시그널링 전략은 기업 경영에도 널리 쓰인다. 현대자동차의 ‘10년 보증제’가 좋은 예다. 아시아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현대차는 미국시장에서 차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에게 차의 엔진과 주요 동력전달 부품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경우 최대 10년, 10만 마일(약 16만 km)까지 무상 수리나 교환을 보장해준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다른 회사들이 5년에 5만 마일 정도까지만 보장해주던 것에 비하면 파격적인 혜택이었다.

장기적인 수리비용 증가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렇게 너그러운 보증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이제 우리도 품질에 자신이 있다’는 신호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사람들은 현대라는 브랜드를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 도요타, 혼다 등 일본 차들의 저가 대용품 정도로 여겨 왔다. 그런데 이 제도를 도입하니 ‘10만 마일까지 무상수리를 보장할 정도로 자신이 있다면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사보자’라고 생각하는 소비자가 늘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현대차는 급성장했다.

시그널링 전략은 이처럼 소비자가 쉽게 확인할 수 없는 성질에 대해서 사용할 때 유용하다. 10년 이상 고장 없는 자동차 엔진을 만들었다고 해서 소비자들에게 10년 동안 지켜본 다음에 구매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현대차는 대안으로 10년 보증제를 통해 품질에 대한 자신감을 간접적으로 알렸다.

주의할 점도 있다. 같은 행위라도 자신의 위치나 상황에 따라 정반대의 시그널을 줄 수 있다. 현대차의 경쟁자인 도요타는 10년 보증 전략을 쓸 수 없었다. 이미 품질 좋은 차로 인식되던 도요타가 갑자기 보증기간을 늘리면 ‘도요타에 무슨 문제가 생겼나’ 하는 의구심을 키울 수 있다. 또 높은 담장과 보안장비가 좀도둑들에게는 경고를 주지만 유능한 도둑에게는 ‘훔칠 것이 많은 집이겠구나’라는 신호를 줄 수도 있다. 시그널링 전략을 사용할 때는 예상치 못한 역효과도 고려해야 한다.

이승현 댈러스 텍사스대 경영학과 교수 lee.1085@utdallas.edu  
정리=조진서 기자 cjs@donga.com  
#DBR#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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