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세로쓰기, 미래자동차에서 되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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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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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셉트카 디자인 연구’ 기아차 석상호 연구원

석상호 기아차 선행디자인팀 연구원이 세로쓰기를 접목한 사용자환경 화면을 설명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세로쓰기가 적용된 차량 
센터페시아 화면은 내비게이션을 비롯해 실내외 온도와 음향기기 정보 등이 한데 모여 있어 보기 편하다. 기아자동차 제공
석상호 기아차 선행디자인팀 연구원이 세로쓰기를 접목한 사용자환경 화면을 설명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세로쓰기가 적용된 차량 센터페시아 화면은 내비게이션을 비롯해 실내외 온도와 음향기기 정보 등이 한데 모여 있어 보기 편하다. 기아자동차 제공
기아자동차 선행디자인팀은 짧게는 3∼4년, 길게는 10년 뒤 도로 위를 달릴 미래의 자동차를 그리는 일을 하는 곳이다.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법한 콘셉트카를 만들기 위해 뒤돌아볼 새 없이 앞으로만 달릴 것 같은 이 부서에서 일하는 자동차 디자이너 석상호 연구원(35)은 회사에서 한물간 것으로 치부되는 ‘한글 세로쓰기’ 전도사로 유명하다.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기아차 사무실에서 만난 석 씨는 기자에게 자신의 태블릿PC로 세로쓰기와 가로쓰기가 혼용된 화면을 보여줬다. 여러 장의 사진과 아이콘, 활자를 섞어 잘 꾸민 인터넷 홈페이지 첫 화면 같았다. 오랜만에 보는 세로쓰기 문장이었지만 읽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는 “한글 모음(母音)의 획은 수직성이 강해 눈의 이동이 좌우보다는 상하가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실내에 탑재될 수 있는 세로쓰기 화면은 내비게이션의 주행 방향과 계기반의 속도, 차량 안팎의 온도, 듣고 있는 음악 제목 등 운전자석 주위로 흩어져 있던 정보가 화면 한곳에 위아래로 정갈하게 모여 있어 한눈에 보기 편했다.

자동차 디자이너가 전공과는 무관한 한글 세로쓰기 연구를 하게 된 계기를 묻자 석 씨는 “미래의 자동차를 연구하다 ‘세로형으로 디자인된 정보기술(IT) 기기에 어떻게 하면 글자를 효율적으로 담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석 씨는 훈민정음을 여러 차례 독파하는 것을 시작으로 도서관을 찾아 1990년대 세로쓰기 신문을 들여다보며 구습(舊習)으로 취급받던 세로쓰기가 가진 디자인적 요소를 발견했다. 지난해 6월에는 한국디자인학회에 ‘세로쓰기를 적용한 하이브리드 유저’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디지털 노마드 시대의 인류는 이동 중에도 끊임없이 정보를 얻으려 하는데 운전을 하며 앞으로 이동하면서 좌우, 지그재그로 읽어야 하는 가로쓰기는 전달력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또 “헤드업 디스플레이(HUD)처럼 투명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자동차 앞 유리에 각종 정보를 올릴 수 있다”며 “공간 활용도가 좋은 세로쓰기를 자동차산업에 응용할 여지가 많다”고 했다. 석 씨는 세로쓰기 사용자 환경을 지난해 3월 특허출원했다.

물론 세로쓰기가 가로쓰기보다 무조건 낫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석 씨는 “스마트 기기는 얼마든지 가로로 눕힐 수 있지만 지금의 가로쓰기에서 세로쓰기를 적절하게 병행한다면 주목도와 사용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한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에 한글로 자동차 이미지를 형상화한 작품을 공개하기도 한 그는 앞으로 세로쓰기에 맞는 폰트를 개발하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다. 석 씨는 “훈민정음을 재해석해 물음표, 느낌표 같은 ‘물 건너온’ 문장기호들을 다시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기아차#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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