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드림]신생 벤처 울리는 은행의 ‘대출 바리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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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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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벤처붐’ 기회 살리자


지난해 창업한 A사는 높은 성장성에도 불구하고 최근 은행 대출에 애를 먹었다. 이 회사는 원하는 방향으로 소리를 낼 수 있는 첨단 스피커를 개발해 최근 태국에 40만 달러(약 4억5000만 원)어치를 수출했다. 본격적인 양산을 눈앞에 두고 금형과 시제품 제작에 당장 1억 원이 필요했지만 주거래은행은 신용등급이 낮다며 신용대출을 거부했다. 결국 이 회사 대표 B 씨(34)는 자신의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5000만 원을 가까스로 빌렸다. B 씨는 “은행들이 창업 초기 기업에 높은 신용등급을 요구하는 건 돈을 빌려주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설비투자가 여의치 않다 보니 채용계획도 자연스레 미뤄졌다”고 털어놓았다.

앞으로 청년실업 해소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는 창업 초기 벤처기업들이 은행권의 ‘대출 양극화’에 막혀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 신생 벤처기업이 어려워지면 10년 뒤 중견 벤처로 성장해 만들 수 있는 청년 일자리도 그만큼 줄게 된다.

24일 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 1000억 원을 넘긴 유망 벤처기업 381개의 고용 증가율(2010년 대비 2011년 기준)은 평균 6.8%로 대기업(2.26%)의 3배 이상이었다.

최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정보기술(IT)과 벤처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며 내놓은 ‘스마트 뉴딜’ 공약도 이를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도 최근 “경제구조의 틀을 대기업 기반에서 창업에 기반을 둔 중소·벤처 혁신기업 위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동아일보가 입수한 2010∼2012년 신용보증기금의 중소기업 신규 보증 규모 자료에 따르면 올 2분기(4∼6월) 신용등급 ‘우량 및 양호(K1∼6등급)’ 기업에 지원된 보증 규모는 2조901억 원으로 2010년 2분기 1조9284억 원보다 1617억 원 늘었다.

반면 대부분의 신생 벤처기업이 속한 신용등급 ‘보통 이하 및 미흡(K11∼15등급)’ 기업에 대한 보증 규모는 같은 기간 9129억 원에서 7067억 원으로 2062억 원 줄었다. 전체 보증액에서 이들 기업에 지원된 비중도 이 기간 20.3%에서 16.9%로 3.4%포인트 감소했다.

실제 집행된 대출 잔액에서도 이런 경향은 그대로 반영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신용등급 우량(1∼4등급) 기업에 대한 대출 잔액 비중은 2008년 12월 37.6%에서 올 7월 말 44.5%로 6.9%포인트 늘었다. 그러나 비우량(5∼6등급) 기업은 같은 기간 56.5%에서 47.6%로 8.9%포인트 줄었다.

이는 은행들이 부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신용등급이 높은 중견기업 위주로 대출을 늘리고,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이 낮은 신생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을 외면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들의 대출 문턱이 높다 보니 신생 벤처기업들은 신용등급이 낮더라도 받을 수 있는 정책자금을 타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고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은 올 3월 청년창업자금 신청에 1194명이 몰리자 서류와 프레젠테이션 전형을 거쳐 이 중 199명을 탈락시켰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자금 지원과 컨설팅을 병행하는 벤처캐피털이나 에인절(angel) 투자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해 신생 벤처기업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성장의 초기 길목에 들어선 창업 4년차 벤처기업들이 충분한 자금을 공급받지 못하면 지난해부터 촉발된 ‘제2의 벤처 붐’은 금방 시들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청년드림#벤처#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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