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회삿돈 잠시 맡은 ‘청지기’… 물려줄 생각 애초 없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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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산 90% 사회환원’ 라정찬 알앤엘바이오 회장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저는 회삿돈을 잠시 맡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딸에게 회사를 물려줄 생각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최근 재산의 90%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힌 라정찬 알앤엘바이오 회장 겸 알앤엘 줄기세포기술원장(49·사진)은 5일 서울 관악구 낙성대동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황우석 사태와 부정적 언론보도 등 힘든 일을 겪으면서 ‘돈과 명예에 집착하지 말자’고 생각했다”며 “최고경영자(CEO)로서 자신을 기업의 주인이 아닌 관리인이라고 생각하면 공정한 행동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본보 9월 5일자 A27면… 라정찬 회장 “내 재산의 90% 1000억원 사회에 바칩니다”

그는 4일 알앤엘바이오 및 계열사의 주식과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전 재산의 90%를 10년 안에 베데스다생명재단, 예성의료법인, 한국기독교학술원, 중앙학원 등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가치로 1000억여 원 규모다.

알앤엘바이오는 국내 성체줄기세포 분야 대표기업으로 꼽힌다. 2005년 정맥에 성체줄기세포를 주사하면 그 세포가 아픈 곳에 직접 작용하는 기술(호밍)을 개발했다. 2009년 말 노인의 줄기세포를 젊은 줄기세포로 만드는 ‘스템셀 디에이징 테크놀로지’를 개발해 작년 9월부터 미국 중국 일본 등에 수출하고 있다.

이번 사회 환원 결정을 두고 가족들은 “올 것이 왔다”며 담담해했다고 한다. “2005년 알앤엘바이오가 코스피에 상장한 뒤 아내와 한마디 상의 없이 수원중앙침례교회와 서울대, 중앙학원과 극동방송에 주식을 10만 주씩 기부했습니다. 그때부터 아내는 이런 일이 올 줄 짐작하고 있었죠.”

현재 이화여대 생명공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인 둘째 딸이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겠다고 했지만 회사를 물려줄 생각은 없다. 라 회장은 “창업 세대들의 결단이 있어야만 부의 사회 환원이 촉진될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서울대 수의대를 졸업한 라 회장은 2000년 알앤엘바이오를 설립했고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다 2005년 말 ‘황우석 사태’가 터지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황우석 박사가 연구한 것은 배아줄기세포로, 라 회장의 분야인 성체줄기세포와 차이가 있다. 라 회장은 “줄기세포에 대해 여전히 불신이 있지만 논문과 치료 결과로 효과를 입증해 나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라 회장은 알앤엘바이오가 올해 하반기(6∼12월) 흑자 전환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그는 “성체줄기세포 보관은행 ‘바이오스타’에 세포를 보관하는 고객수가 1만7000명으로 늘어난 데다 자가성체줄기세포를 추출 배양 보관하는 기술을 수출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며 “연골을 치료하는 ‘조인트 스템’ 등이 의약품 허가를 받아 국내에서 시술할 수 있게 되면 내년 매출이 1300억 원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매출은 531억 원.

라 회장은 “2015년까지 30개국 이상에 연구센터를 만들고 세계에서 성체줄기세포로 난치병을 가장 많이 치료하는 회사가 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라정찬#알앤엘바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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