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시외버스 요금 꿈틀 ‘물가 폭풍’ 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 ‘저성장-고물가’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높아져

“장보기가 두려워요” 19일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직원이 채소 코너에 놓인 상품들을 정리하고 있다. 올여름 폭염의 여파로 배추, 상추 등 채소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장보기가 두려워요” 19일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직원이 채소 코너에 놓인 상품들을 정리하고 있다. 올여름 폭염의 여파로 배추, 상추 등 채소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공공요금과 농수산물 가격 등 생활물가가 치솟으면서 하반기에 ‘물가 폭풍’이 예고되고 있다.

시동은 식료품 업체들이 걸었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이어진 정부의 물가상승 억제 기조에 맞춰 가격 인상을 미뤄오던 관련 업체들은 최근 가공식품 소비자가격을 잇달아 올리고 있다. 여기에 이달 초 오른 전기요금을 시작으로 택시요금 등 공공요금도 들썩이고 있다.

문제는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물가 상승의 압력이 더욱 커질 것이란 점이다. 여름 내내 급등한 국제곡물 가격은 4∼6개월의 시차를 두고 국내 물가에 반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침체로 한동안 잠잠했던 국제유가마저 최근엔 오름세로 방향을 틀었다. 전문가들은 수요가 침체된 가운데 비용 증가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서 저성장과 고물가가 결합된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연말쯤 본격화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 택시 기본요금 3000원대 시대 눈앞

19일 기획재정부와 국토해양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전국의 택시요금이 이르면 내년 초 일제히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의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인상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현재 지역에 따라 2200∼2400원인 기본요금이 최고 3000원을 넘기는 곳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부산시는 내년 1월 기본요금을 2200원에서 2800원으로 인상하기로 했고 서울시도 택시업계의 요금 인상안을 접수한 상태다. 정부는 또 시외버스 요금도 5∼10%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장철을 앞두고 식탁물가도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전국 평균 배추 상품(上品)의 도매가격은 지난달 말 kg당 760원에서 이달 17일 990원으로 30.3%나 올랐다. 상추 가격도 17일 현재 4kg에 1만9600원으로 1주일 전(10일)보다 11.4% 올랐고, 시금치도 같은 기간 43.1% 상승했다.

가공식품업체들은 이미 상당수 주요 제품의 가격을 인상했다. CJ제일제당은 최근 ‘햇반’값을 10년 만에 9.4% 올렸고, 동원 오뚜기 등은 참치캔 가격을 최대 10% 가까이 인상했다. 코카콜라 새우깡 맥주 라면 등 다른 가공식품의 가격도 이미 올렸거나 해당 업체들이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최근의 릴레이 가격 인상은 지난해부터 정부가 가격담합 조사, 과징금 부과 등으로 인상을 최대한 억제하던 식품업체들이 채산성의 한계에 부닥쳐 피치 못하게 값을 올린 것”이라고 말했다.

○ 정부도 ‘뾰족한 대책’ 없어

정부는 물가관리의 분수령으로 올해 말을 지목하고 있다. 세계적인 가뭄으로 인한 국제 곡물가격 상승분이 단기적으로는 국내 외식비, 가공식품 가격에 반영되고, 장기적으로는 사료 가격 급등을 야기해 축산물 가격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국제 선물(先物)시장에서 옥수수 가격은 17일 현재 t당 317달러로 연초(1월 평균가격)보다 27.8% 올랐고, 밀과 콩 가격도 같은 기간 각각 26.9%, 38.8% 급등했다. 한동안 경기침체로 하향곡선을 그리던 국내 휘발유 가격마저 국제유가 상승의 여파로 최근 한 달간 L당 70원가량 올랐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국제 곡물, 유가의 상승세는 수요 증가가 아닌 비용 상승의 결과”라며 “이대로 가면 올 하반기 한국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로서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게 문제다. 침체된 경기를 고려할 때 한국은행의 금리인상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동안 정부의 ‘물가 지킴이’를 자처해온 공정거래위원회도 최근 식품업계의 가격 인상에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담합 관련 신고나 불공정거래 혐의 없이 가격이 올랐다고 무조건 조사에 들어가면 시장에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물가엔 환율 유가 기후가 ‘3대 변수’로 꼽히는데 이 중 기후가 제일 예측하기 힘들다. 요즘 매일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하반기#물가#상승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