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명운 가르는 특허전쟁… “패하면 문 닫을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삼성-애플 법정공방… 글로벌 소송전 관심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삼성전자와 애플 간에 ‘세기의 특허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미국 새너제이 캘리포니아 연방북부지방법원. 전날 배심원과 증인 채택에 이어 본격적인 심리 첫날인 이날 양쪽은 팽팽한 공방을 벌였다.

애플의 해럴드 매켈히니 변호사는 모두(冒頭)변론에서 2007년 애플의 아이폰 발표 이후 삼성전자 휴대전화의 디자인이 바뀌었다는 슬라이드를 보이며 “삼성은 모든 것을 베꼈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삼성전자의 찰스 버호벤 변호사는 “아이폰 출시 전에도 직사각형에 모서리가 둥근 형태의 다양한 스마트폰이 있었다”고 강조하며 “경쟁사 제품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통상적인 경영활동이며 아이폰도 소니를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맞받았다.

이날 법원은 삼성전자의 핵심적인 증거 제시를 막아 빈축을 샀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인 2006년부터 개발해 2007년 2월 발표한 ‘F700 제품 개발’에 대해 증언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아이폰 출시 전부터 일관된 디자인 흐름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진도 배심원들에게 공개할 수 없도록 했다. 삼성전자 측 변호사는 이에 항의하며 관련 자료들을 언론에 배포하기도 했다.

○ 특허 대응 잘못하면 명운 갈려

삼성전자와 애플의 소송은 특허가 기업경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애플은 삼성전자의 특허 침해로 25억2500만 달러(약 2조8500억 원)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앞으로 삼성전자가 디자인 특허를 사용할 때마다 단말기당 90∼100달러의 사용료를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애플이 자사의 통신특허를 침해했다며 그 대가로 기기 가격의 2.4%를 로열티로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2분기(4∼6월) 2600만 대의 아이폰을 판 애플은 3억7500만 달러(약 4300억 원)의 로열티를 삼성에 내야 한다. 어느 쪽이건 패소하면 애써 번 돈을 고스란히 경쟁사에 갖다 바쳐야 하는 치명적인 손실을 입는다.

1881년에 설립돼 한 세기 이상 세계 카메라산업을 이끌어온 코닥은 특허전략에서 실패해 위기에 빠진 대표적 기업이다. 코닥은 1980년대 후반 즉석카메라업체 폴라로이드와의 특허소송에서 져 손해배상금 8억7300만 달러를 비롯해 판매한 즉석카메라 회수, 소송비용, 공장 폐쇄 등으로 총 30억 달러(당시 화폐가치 기준)를 지출해야 했다.

결국 코닥은 올 1월 파산보호를 신청하기에 이르렀지만 이미지 처리기술 등 이 회사의 특허는 현재 애플과 구글이 치열한 인수전을 벌이고 있다. 코닥은 1100여 건의 특허를 매물로 내놓으면서 약 26억 달러(약 2조9400억 원)의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 “도둑질하러 갔더니 먼저 훔쳐가”

아무리 혁신적 기술이 있어도 특허전략을 잘못 세워 실패한 사례도 많다. 1988년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운영체제 윈도가 자사의 그래픽 사용자환경(GUI) 기술을 베꼈다며 제소했다. 하지만 MS는 법원에서 애플도 제록스의 기술을 참조했다는 것을 증명했고 애플은 패소했다. 스티브 잡스 당시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빌 게이츠 MS CEO를 ‘도둑’이라고 비난하자 게이츠는 “제록스라는 부자 이웃집에 TV를 훔치러 갔더니 이미 애플이 훔쳐갔더라”고 반박했다. 이후 애플은 PC시장 주도권을 MS에 완전히 빼앗겼다.

한국도 뼈아픈 경험이 있다. 1997년 세계 최초로 MP3플레이어를 개발한 디지털캐스트는 디지털 파일로 음악을 재생하는 기술로 국내외에 특허를 출원했지만 특허의 범위를 모호하게 하는 바람에 유사 제품을 내놓은 후발 업체들로부터 특허 무효소송을 당했다. 결국 이 회사의 국내 특허는 소멸됐으며 해외 특허 역시 몇몇 회사를 거쳐 2007년 특허전문회사(일명 특허괴물)인 ‘텍사스 MP3 테크놀로지스’의 손에 넘어갔다. 만약 이 특허를 국내 업체가 갖고 있었다면 2005∼2010년 약 3조1500억 원의 로열티 수익을 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상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술이 발전하고 특허의 가치가 커지는 데도 특허전략을 잘못 세워 무너지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며 “그동안 특허의 중요성을 간과해온 한국도 지금부터라도 특허권 보호를 강화하고 전문 특허인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특허전쟁#삼성-애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