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양극화 심화…저소득층 허리 더 휜다

  • Array
  • 입력 2012년 7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경기침체 → 수입감소 → 이자증가 → 연체’ 악순환 우려

#1. 택시 운전을 하는 서모 씨(46)는 지난해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요구에 저축은행에서 2800만 원을 급하게 빌렸다. 월 200만 원 안팎인 수입에 월이자 30만 원은 무리였지만 꼬박꼬박 상환해왔다. 하지만 올 초 어머니의 수술비가 필요해 추가로 대출을 받았다가 지난달부터 갚지 못하고 있다. 그는 “연체 독촉 문자를 받을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힌다”며 “불황으로 수입도 줄어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했다.

#2. 대기업 전자계열사에 다니는 최모 부장(49)은 최근 여름휴가비 명목의 성과급을 받았다. 이 덕분에 대출금 1억5000만 원 중 2000만 원을 일시 상환했다. 그는 “수중에 돈이 있어도 마땅한 투자처가 없고 차라리 대출 원금을 갚아서 매월 내는 이자라도 줄이자는 생각에서 돈을 갚았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로 고소득자와 저소득자의 대출 격차가 벌어지는 ‘대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저소득층이 ‘경기 침체→수입 감소→대출이자 부담 증가→연체’로 이어지는 덫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가계부채가 1000조 원을 육박하는 가운데 저소득 대출 취약계층이 대거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면 파장이 심각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저소득층, 소득의 22% 원금-이자로

18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2011년 소득 하위 20%인 1분위의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비율(DSR·Debt Service Ratio)은 22.1%로 2010년 20.0%보다 증가했다. 이는 100만 원을 벌면 22만1000원을 원리금으로 낸다는 뜻이다. 반면 같은 기간 소득 상위 20%인 5분위의 DSR는 9.2%에서 9.0%로 줄었다.

전체 가계대출에서 소득별 가계대출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커졌다. 총 가계대출에서 연소득 2000만 원 미만 가구가 신규로 가계대출을 받은 금액 비중은 2010년 말 10.7%에서 2011년 말 14.2%로 급등했다. 연소득 2000만 이상∼3000만 원 미만 가구의 대출 비중 역시 같은 기간 19.1%에서 24.4%로 크게 늘었다.

반면 연소득 6000만 원 이상 가구의 대출 비중은 2010년 말 19.7%에서 13.8%로 줄어 고소득자들은 경기침체의 영향을 덜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 관계자는 “소득이 줄어든 가운데 보험 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 등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대출을 받는 수요가 늘어난 데 따른 결과”라고 말했다.

○ 저소득층 연체율, 고소득층의 2배

저소득층은 연체율에도 취약했다. 연체율은 연소득 2000만 원 미만 가구의 경우 2010년 말 0.54%에서 올해 1월 0.84%로 뛰었다. 같은 기간 6000만 원 이상 가구의 연체율은 0.34%에서 0.44%로 소폭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저소득층은 소득 감소로 대출을 더 많이 받지만 갚을 여력은 없어서 연체율이 급등하는 악순환이 수치로 입증된 셈이다.

가계대출의 불평등도도 높아졌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가처분소득에서 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부채 지니계수는 2006년 0.710에서 2011년 0.801로 급속하게 악화됐다.

대출 양극화의 주요인은 소득수준의 격차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처분소득에서 소비성지출을 뺀 흑자가 차지하는 비율인 흑자율이 1분위 소득계층은 2010년 ―29.6%에서 2011년 ―31.9%로 떨어졌다. 반면 5분위 소득계층은 2010년 36.3%에서 38.7%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기에 더욱 취약한 저소득층의 대출상환 능력이 보강되지 않으면 가계부채 폭탄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거치 기간 종료로 원금 상환이 시작되는 대출 규모가 늘면서 저소득층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며 “저소득층의 기초체력을 길러주는 동시에 저소득층에 특화한 연착륙 조치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경기침체#연체#대출#채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