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출 ‘머들링 스루’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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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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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中-유럽 쏠림 심각… 불황형 흑자 비상

#1 대형 프레스 등 기계를 제조하는 공작기계 기업들은 최근 바짝 긴장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국내 공작기계 수출의 50%를 차지하는 거대 시장이다. 올해 1∼4월 공작기계의 대중(對中) 수출액은 2억9100만 달러(약 3347억 원)로 지난해 동기보다 46.7%나 늘었다. 중국에서의 스마트폰과 자동차 생산시설 투자가 늘어나면서 공작기계 수요가 증가했다. 그리스 구제금융 등에 따른 유럽발 재정위기가 가라앉나 싶었다. 하지만 상황은 반전됐다. 5월 중순 이후 각국의 재정위기 해결 방안에 대한 나라 간 이견을 해소하지 못하면서 중국 내 투자심리가 위축됐다. 공작기계업계의 5월 수출액은 전월 대비 17.6% 급감했다.

#2 이탈리아 수출을 담당하고 있는 한 가전업계는 올해 수출이 지난해보다 10%가량 줄었다. 유럽 경기가 워낙 악화된 데 따른 것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소득이 감소한 소비자들이 가격에 민감해진 탓에 업체들의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익이 더 많이 감소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의 수출 전선에 비상등이 켜졌다. 유럽의 재정위기로 촉발된 세계경기의 침체로 각국의 소비심리가 위축되자 한국도 직격탄을 맞을 조짐을 보인다. 특히 국내 수출액의 절반에 육박하는 미국, 중국, 유럽연합(EU)의 경기가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한국 경제가 세계 경기침체라는 진흙탕을 통과하면서 성장동력이 서서히 식는 ‘머들링 스루(muddling through)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우려했다.

○ 달갑지 않은 ‘불황형 흑자’

15일 관세청이 발표한 ‘6월 및 상반기 수출입 동향’(확정치)에 따르면 6월 무역수지 흑자는 49억1000만 달러(약 5조6500억 원)로 지난해 6월(19억1000만 달러)보다 갑절 이상으로 늘었다. 5개월 연속 흑자 행진이다. 월간 흑자 규모로는 2010년 10월(63억4000만 달러) 이후 최대 규모이며 역대 6번째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다르다. 수출 실적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소비 심리 위축으로 수입품 구매 감소 등에 따른 ‘불황형 흑자’이기 때문이다. 6월 수출은 지난해 6월보다 1.1% 증가한 472억5000만 달러, 수입은 5.5% 줄어든 423억4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6월 수입은 5월(―1.08%)에 이어 두 달째 감소해 부진한 내수 경기를 반영했다.

한은이 발표한 상반기 경상수지 전망치 역시 불황형 흑자 패턴을 보인다. 한은은 올해 상반기 경상수지를 135억 달러로 지난해 상반기(90억6000만 달러)보다 49%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는 외국인의 국내여행 증가, 한국인의 해외여행 감소로 인한 서비스수지 흑자의 영향이다.

○ 미·중·유럽 쏠림 현상

특히 수출은 EU, 중국, 미국 등 이른바 ‘삼각 편대’ 지역에서 부진했다. 이들 지역의 수출액은 유럽(9.3%·올해 상반기 금액 기준), 중국(23.0%), 미국(11.1%) 등 43.4%나 된다.

EU로의 수출은 4개월째 감소하며 상반기에 16.1%나 줄었다. 대미(對美) 수출은 상반기 10.2% 늘었지만 5월 ―8.4%, 6월 ―0.3%로 2개월 연속 하락했다. 중국으로의 수출도 4개월 연속 감소세로 상반기 1.5%나 줄었다.

문제는 이들 지역에서 침체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의 2분기 경제성장률(7.6%)이 3년 만에 7%대로 떨어진 가운데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15일 “중국의 경기회복세가 아직 안정적이지 않으며 중국 경제가 일정 기간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경제 성장은 1분기 1.9% 성장에 이어 2분기 2% 미만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최근 “미국 경제 성장이 정체 국면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민간 부문 경기가 5개월째 위축세를 보인다. 유로존의 6월 종합구매관리자지수(PMI)는 46.4로 전달(46.0)보다는 개선됐지만 5개월 연속 기준치(50.0)를 밑돈다. 코메르츠방크는 2분기 유로존이 전 분기보다 0.25%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으로 전망했다. 마르틴 블레싱 코메르츠방크 최고경영자는 “유로 위기가 빨리 끝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 머들링 스루 (muddling through) ::

유럽 재정위기로 촉발한 경제 침체의 장기화 현상을 말한다. 시간을 끌면서 힘겹게 나아간다는 뜻으로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대외환경에서 살아남는 것을 헤쳐 나가기 힘든 진흙 속을 통과하는 상황에 비유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수출#머들링 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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