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노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 Array
  • 입력 2012년 6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업무능력 신입사원의 4배”… 현대重 ‘정년후 재고용’ 3년째
베이비붐 세대 노하우 DB化

장영권(60), 영석(58) 씨 형제는 30년 동안 매일 아침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로 나란히 출근한다. 1973년 현장 생산직 근로자로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형 영권 씨는 2010년 정년(만 58세)이 돼 퇴직했다. 하지만 형제는 오늘도 함께 울산조선소 현장으로 향한다. 현대중공업이 실시하고 있는 ‘정년 후 재고용’ 덕분이다.

현대중공업 장비운영부에서 일하고 있는 영권 씨는 정년퇴직 후 2011년 1월 1일부터 다시 현장으로 향했다. 현대중공업은 생산직 근로자에 한해 근무태도와 건강에 큰 문제가 없으면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영권 씨는 “퇴직 전 연봉의 80% 정도를 받고 있지만, 돈보다도 여전히 일할 수 있다는 데 만족을 느낀다”며 “현장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 직원들도 많다”고 말했다. 동생 영석 씨 역시 올해 말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지만, 내년에도 현장에서 일할 예정이다.

2009년부터 ‘정년 후 재고용’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은 재고용 인력이 올해로 1800명을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625명이 정년퇴직을 했는데 이 중 97%인 607명이 계약직으로 전환해 올해 1월부터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이 제도를 실시하는 것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수십 년 동안 현장에서 일하며 익힌 작업 노하우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임금만 놓고 보면 정년 후 계약직 1명을 채용하는 금액이나 신입 직원 2명을 채용하는 금액이나 같다”며 “하지만 정년 후 계약직 1명이 하는 일을 하려면 신입 직원 4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정년 후 재고용은 중공업 사업장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회사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베이비부머들의 은퇴가 본격화된 데 따른 것이다. 포스코도 지난해부터 정년(만 58세)이 돼 은퇴하는 생산직 직원 가운데 본인이 희망하면 모두 60세까지 재고용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포스코는 “베이비부머 생산직들의 노하우를 학습 활동 등을 통해 근속연수가 낮은 직원에게 전수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며 “지난해에만 생산직 직원 650명이 은퇴 후에도 포항 및 광양제철소에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도 재고용된 직원들을 멘토 격인 ‘아버지 사원’이라 이름 붙이고 이들에게 신입 직원들을 교육하는 역할을 맡기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안이 근본적인 대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기업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베이비부머들을 언제까지나 현장에 붙잡아 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동국제강은 올해부터 퇴직을 앞둔 생산직 근로자들의 일일 업무를 데이터베이스(DB)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출근부터 퇴근까지 하루 일과를 세세하게 기록해 DB화하고, 이를 토대로 업무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있다”며 “자동화로도 대체할 수 없는 ‘눈과 손의 힘’을 신입 직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울산=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현장 생산직 근로자#베이비부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