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 발원 ‘죽음의 호수’, 한국인이 ‘생명의 땅’으로 바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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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그룹 ‘그린존’ 사업 5년 성과… 中 네이멍구 80㎢ 차간눠얼 호수 르포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의 차간눠얼 호수는 물이 말라 하얀색의 강알칼리성 물질로 덮였었다. 식물이 뿌리 내릴 수 없는 이곳을 현대자동차그룹과 에코피스아시아가 5년 만에 초원으로 만들었다. 현대차그룹의 후원으로 한국 대학생 80명이 모래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줄여주는 사장(沙障)을 만들고 있는 모습. 사진작가 성남훈 씨 제공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의 차간눠얼 호수는 물이 말라 하얀색의 강알칼리성 물질로 덮였었다. 식물이 뿌리 내릴 수 없는 이곳을 현대자동차그룹과 에코피스아시아가 5년 만에 초원으로 만들었다. 현대차그룹의 후원으로 한국 대학생 80명이 모래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줄여주는 사장(沙障)을 만들고 있는 모습. 사진작가 성남훈 씨 제공
23일 오후 1시경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의 대초원 한복판. 여의도의 18배(80km²) 크기로 한때 최대 수심이 8m를 넘었다는 호수에는 물기조차 없다. 하지만 이 척박한 환경을 뚫고 곳곳에서 어린 풀들이 늦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곳은 베이징에서 660km 떨어진 네이멍구 시린궈러 맹에 있는 차간눠얼 호수. 네이멍구를 휩쓰는 자원개발 붐과 이상기후는 오랜 세월 대초원에 생명수를 공급해온 이 호수의 목숨을 앗아갔다. 몽골족이 말을 타고 하루를 달려야 간신히 한 바퀴 돌 수 있었던 거대한 호수는 꼭 10년 전인 2002년 완전히 말랐다. 호수는 pH10 안팎의 강알칼리성 물질로 하얗게 덮인 죽음의 땅이 되었다. 봄철 강한 바람은 강알칼리성 분진을 잔뜩 포함한 황사를 일으켜 반경 수십 km 내의 초원과 유목민의 삶을 황폐화시켰다. 이날도 바지가 펄럭일 정도로 바람이 불었고 멀리 호수 바닥에서는 하얀 모래바람이 일었다.

그러나 이곳에 생명이 다시 싹트고 있다. 바로 한국인들이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현대자동차그룹과 한국에 본부를 둔 국제환경보호단체 에코피스아시아는 2008년부터 5년 동안 ‘현대 그린존’ 사업을 통해 현지 유목민과 지방정부가 환호하는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 냈다.

●풀이 자란다…죽음의 땅에서

살아 숨쉬는 호수로 2009년과 2011년 위성으로 찍은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의 차간눠얼 호수. 2009년 식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던 하얀 호수 바닥(위)이 2년 만에 풀(호수 주변의 짙은 색 부분)로 뒤덮인 게 보인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살아 숨쉬는 호수로 2009년과 2011년 위성으로 찍은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의 차간눠얼 호수. 2009년 식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던 하얀 호수 바닥(위)이 2년 만에 풀(호수 주변의 짙은 색 부분)로 뒤덮인 게 보인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이곳에 풀이 자랄 것이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호수가 굽어보이는 언덕 위에서 몽골족 유목민 이더르궁(伊德日貢) 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2, 3년 전만 해도 풀씨를 심으며 반신반의했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봄철 호수에서 발생한 하얀 먼지바람은 눈 주위를 하얗게 만들 정도로 위력이 대단했다. 사람이나 소 양 가축들은 폐병 등 호흡기질환에 시달렸다. 호수 바닥에서 바람에 날려간 강알칼리 성분 때문에 주변 초원에서도 풀이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강알칼리 물질 범벅인 호수 바닥엔 어떤 풀도 자라지 못했다.

위성사진에서 확인되는 호수의 변화는 놀랍다. 2009년 사진에는 황량한 백색 사막이 보이는데 2011년 9월 사진에는 호수 면적의 절반가량(38km²)이 녹색으로 표시됐다. 올해는 50km²까지 넓어진다. 호수가 풀에 덮이자 하얀 황사가 현저히 줄었다. 도마뱀 들쥐 같은 작은 동물이 모였고 이들을 쫓아 여우 같은 포식동물도 출몰하기 시작했다. 호수 바닥 곳곳에는 동물들의 크고 작은 ‘배설물’이 산재해 있다. 몽골족 유목민 다무딩쑤룽(達木丁蘇榮) 씨는 “여기는 아무것도 없던 곳”이라며 “이곳에서 동물의 똥을 본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라고 말했다.

●체계적 접근으로 성과 거둬

이곳은 강한 바람이 연중 부는 해발 1000m의 고원지대. 무엇보다 호수가 마르면서 남긴 강알칼리 성분을 이겨내는 식물을 찾아야 했다.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본격 파종에 앞서 호수 바닥에 2000m²가량의 실험용 밭을 일궈 이런 혹독한 환경에 잘 견딘다는 식물 33종을 심었다. 장쑤 성 옌청의 기아자동차 공장이 이런 토양에서 잘 자라는 식물의 씨앗을 공급하는 데 한 몫을 했다. 결과는 오직 나문재만이 살았다. 감봉으로도 불리는 나문재는 인천공항 주변 등 한국 바닷가에도 무성히 자라는 1년생 식물이다. 녹색을 띠다 가을에는 붉은색으로 변한다.

나문재 씨앗을 무작정 심는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강한 바람에 씨앗이 날아가거나 모래에 파묻히는 것을 막아야 했다. 풍향 풍속 습도 등을 자동으로 재는 기상관측 장비로 365일 24시간 관측했다.

바람 골을 찾아 일일이 손으로 약 30cm 높이의 나뭇가지들을 촘촘히 꽂아 장벽을 만들었다. 사장(沙障)이라 불리는 얕은 장벽이지만 바람에 날리는 모래를 줄여 씨앗의 생존율을 크게 높인다고 한다. 지난해까지 4년 동안 한국과 중국의 대학생 등 1300명의 자원봉사자가 이곳을 찾아 일주일 이상 몽골텐트에서 야외 생활을 하면서 이런 작업을 했다. 호수 바닥 곳곳에 있는 길이가 수백 m에 이르는 나무 장벽들은 이런 노동의 산물이다.

●마른 호수 복원하는 최초의 사업

중국에서 사막화 방지에 나선 글로벌 대기업은 꽤 많지만 다들 이 지역보다 환경이 나은 지역에서 나무 심기 등을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에코피스아시아가 하는 일은 네이멍구 대초원에서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많은 마른 호수를 대상으로 한 최초의 복원 사업이다. 그만큼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일이었다.

사업이 성공하면서 중국 내에서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사업을 책임진 현대차 중국본사는 한국계 기업 중 유일하게 2011, 2012년 2년 연속 반관영 통신사인 중국신문이 선정한 ‘중국 사회의 가장 책임감 있는 기업’으로 뽑혔다. 또 2011년 10월에는 유엔에 이 사업과 관련해 정식으로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에코피스아시아는 지난해 유엔사막화방지협약 제10차 당사자총회에서 사막화방지 시민사회단체 네트워크 결성에 참가해 공동대표 단체이자 공동 운영위원장, 정책분과 위원회 간사단체로 뽑혔다.

현대차 중국본사 담도굉 부사장은 “네이멍구 지역은 한국에도 피해를 줘온 황사의 발원지 중 한 곳”이라며 “중국의 사막화 문제는 지구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침 한국의 황사 피해는 올해 예년에 비해 줄어들고 있다. 바람의 방향 등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중국의 버려진 사막에서 땀 흘려온 한국인들의 노력이 조금씩 결실을 볼 것이라는 기대감을 키워준다.

시린궈러=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황사#죽음의 호수#현대차그룹#그린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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