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의 늪, 불법 사금융]<上> 갈수록 교묘해지는 수법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500만원 빌려줄땐 “연장가능”… 석달뒤 ‘20% 수수료 폭탄’

《 2009년 8월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불법 사채업자들의 폭행 추심 등의 사례는 많이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최근 불법 사채업자들은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한층 교묘해진 수법을 동원해 접근한 뒤 이들을 착취하고 있다. 》
불법 사채업자들은 신분을 속이고 이자를 받지 않을 것처럼 돈을 빌려준 뒤 연이율도 명시하지 않은 채 고리를 뜯어낸다. 정장을 갖춰 입고 친절한 상담까지 해주며 단시간 안에 돈을 빌려주고는 머지않아 마각을 드러내며 불법 추심을 일삼는다. ‘○○금융’ ‘○○캐피털’처럼 기존 금융회사와 혼동하기 쉬운 이름을 써 경제적 어려움에 사람들을 현혹시키거나 무등록업체면서도 등록 업체라고 속여 안심시킨 뒤 연이율 수백 %대를 챙기는 경우도 많다.

술집을 운영하던 이모 씨(45·여)는 2009년 가게 주변에 있던 ‘대출, 아무데서나 받지 마세요. ○○대부의 대출은 안전합니다’라고 적힌 전단을 보고 500만 원을 빌렸다. 이들은 “불법과는 무관한 정상 업체”라면서 이 씨 아들 자동차를 담보로 500만 원에서 수수료로 60만 원을 뗀 440만 원을 빌려줬다. 처음 빌려줄 때는 “매월 20만 원 갚고 원금은 돈이 생겼을 때 갚아라. 3개월 단위로 대출 연장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3개월 뒤엔 태도를 바꿔 “대출을 연장하려면 100만 원을 수수료로 내라. 아니면 원금을 갚아라”고 압박했다. 이 씨는 “전화 한 통으로 주말에도 손쉽게 돈을 빌릴 수 있는 게 좋았고 한 달에 20만 원만 갚으면 된다는 생각에 돈을 빌렸는데 그렇게 친절하던 사람들이 조폭처럼 변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불법 사금융 업자들은 ‘안전’ ‘등록’ ‘친절’ ‘믿음’ 등의 각종 용어를 남발하며 시중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거절당해 어디에서도 돈을 빌릴 수 없는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파고든다. 한국대부금융협회가 지난해 5월 3일∼6월 14일 불법 사금융 관련 민원인 및 서울 남대문시장 상인 46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금융기관 대출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사채를 쓴 사람이 응답자 210명 중 109명(52%)에 달했다. 돈의 용도에 대한 질문에는 ‘생활자금’과 ‘사업자금’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각각 38%와 37%였다.

불법 사금융에 한번 발을 들이게 되면 고금리에 시달리면서도 사채에서 발을 빼지 못하고 계속해서 돈을 빌리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마땅히 돈을 빌릴 곳 없는 사람들에게 ‘은행 대출보다 간단하고 빠른 곳’이라는 사채의 장점이 도드라져 보이기 마련이다.

2007년 급전이 필요했던 주부 황모 씨(40·여)는 한 온라인 불법 대부업체 상담코너에 글과 전화번호를 올렸다. 그러자 곧바로 30대 후반의 회사원으로 보이는 남성이 말끔한 양복을 입고 집으로 찾아와 10분 만에 50만 원에서 선이자 17만 원을 뗀 33만 원을 빌려줬다. 이후에도 황 씨는 100만 원을 빌린 뒤 일주일에 이자로만 10만 원을 내거나 50만 원을 빌린 뒤 이자로만 한 달에 40만 원을 내면서도 사채의 손길을 끊지 못했다. 그는 “정말 절박할 때 10분 만에 돈을 빌릴 수 있다는 점이 좋아 고리에 시달리면서도 벗어날 수 없었다”며 “나같이 직장 없고 보증인도 없는 데다 신용유의자인 사람이 급할 때 돈 빌릴 수 있는 방법은 사채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불법 사채업자는 당장 돈이 급한 사람들이 등록업체인지 아닌지를 꼼꼼하게 따지지 않는다는 점을 노려 ‘등록업체’로 속이는 일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안심시킨 뒤 최단 시간 안에 돈을 빌려주고는 고금리로 압박한다. 등록된 업체에서는 자신의 낮은 신용으로는 돈을 빌려줄 것 같지 않아 처음부터 미등록 업체를 찾아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

저축은행 콜센터에서 비정규직 상담원으로 근무하는 K 씨(24·여)는 나이가 어리고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제도권에서 대출을 거절당하자 지난달 최후의 방법으로 개인사채업자에게 300만 원을 빌렸다. 300만 원 중 150만 원을 선 수수료로 떼고 5개월간 월 69만 원을 갚는 조건이었다. K 씨는 “저축은행에서 일해 미등록 대부업체의 법정 이자율 상한선인 연 30%를 큰 폭으로 웃돈다는 사실을 알았고 불법이라는 것도 알았지만 당장 돈이 급해 어쩔 수 없었다”며 “다음 달 2일이면 2회차 이자를 내야 하는데 150만 원밖에 되지 않는 월급으로는 이 돈을 갚을 수 없을 것 같아 무섭다”고 했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사채가 당장은 편리하지만 나중에 더 큰 덫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서도 “불법 사금융이 편하고 신속하게 대출되는 게 장점이라면 서민금융도 대출 속도를 개선하고 이를 위주로 홍보해 사채의 굴레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끌어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금융#대출#불법사금융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