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산은의 HSBC지점 인수, 과연 ‘공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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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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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영 경제부 기자
황진영 경제부 기자
산업은행은 9일 홍콩상하이은행(HSBC) 국내 지점의 개인금융사업부문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인수에 드는 돈 없이 사실상 공짜로 넘겨받게 됐다고 밝혔다. 산은이 이렇게 설명하는 이유는 기업을 통째로 사는 인수합병(M&A)이 아니라 HSBC가 갖고 있던 예수금(부채)과 동일한 액수의 대출채권을 가져오는 자산부채인수(P&A) 방식을 썼기 때문이다.

P&A는 생소해 보이지만 개인의 경제활동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할부가 2000만 원 남은 자동차를 친구로부터 넘겨받으면서 할부를 모두 떠안는 조건으로 한다면 산은의 P&A 방식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겉으로 멀쩡해 보이던 자동차가 인수 이후 잔 고장이 계속 생긴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오히려 손해를 봤다고 하지 않을까. 같은 맥락으로 지금은 정상으로 보이는 HSBC의 대출채권이 사실은 100% 회수가 불가능한 부실채권으로 바뀔 개연성을 상정할 수 있다. 대출 채권이 장부상으로는 3000억 원으로 돼 있어도 일부 돈을 떼인다면 그만큼 손해를 보고 사는 셈이다.

산은 설명대로 자산과 부채의 가치가 같다고 하더라도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 있다. HSBC는 조만간 국내 시장에서 손을 털고 나가야 될 형편이었다. HSBC 등 세계 주요 은행들은 2015년부터 적용하는 바젤Ⅲ에 대비해 유동성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국제 자본규제 체계인 바젤Ⅲ은 구간별 대손적립금 비율을 높였기 때문에 은행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현금을 보유해야 한다. 이 때문에 유동성 비율이 낮은 은행들은 비핵심 사업부문을 팔고 있다. HSBC가 이번에 개인금융부문을 매각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개인금융부문을 팔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살 만한 국내 은행이 나타나지 않아 난처하던 상황에서 산은이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한 은행장은 “시간이 지나면 HSBC가 세일에 나설 수도 있었다”며 “산은의 연내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 강만수 KDB산은금융그룹 회장의 마음이 급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인수된 뒤 헐값 매각 논란에 휩싸인 것도 금융 당국이 매각을 서둘러 제 값을 못 받았기 때문이었다. 산은은 이번 인수에 한 푼도 들지 않았다고 좋아하지만 금융권에서는 더 싸게 살 수 있었던 기회를 산은이 걷어찼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론스타에 비싼 수업료를 냈음에도 국내 금융업계는 ‘시간이 가장 강력한 우군’이라는 점을 체득하지 못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황진영 경제부 기자 buddy@donga.com
#산업은행#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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