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가세 면제해준 분유값 요지부동… 그럼 누가 ‘꿀꺽’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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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최고급 분유는 1통에 5만 원인데 최고급 독일산 분유 1통은 2만8000원이라니, 왜 이렇게 싼 거죠?”

“독일은 분유에 세금을 매기지 않거든요. 현지에선 13유로(약 1만9240원)로 더 싸답니다. 선진국은 뭐가 달라도 다르죠.”

최근 아기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독일 압타밀 분유의 국내 수입판매가는 800g 1통에 2만8000원이다. 관세와 유통비가 붙은 수입가격이 가장 많이 팔린다는 국산 분유제품 가격대(2만5000∼3만 원) 수준이다. 독일 현지 판매가(13유로)는 국내 최저가인 1만9000원대에 불과하다.

부러움과 분노가 뒤섞인 엄마들이 인터넷 육아 커뮤니티와 블로그에 분유의 이해할 수 없는 가격구조에 대해 질문을 올리면 “선진국이라 아기 제품에 세금이 붙지 않는다”라는 답이 돌아온다.

하지만 이 답은 절반만 맞다. 독일에서 분유에 세금을 매기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2009년부터 분유, 기저귀에 부가가치세를 붙이지 않기로 했고, 부가세 면제는 올해부터 산후조리원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부가세 면제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세금을 내리기 무섭게 업체들이 값을 올리기 때문이다.

정부가 정책적인 이유로 상당수 제품에 부가가치세나 관세 등 간접세 인하 혜택을 주고 있지만 정작 체감효과는 거의 없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세금을 깎아주는 만큼 제품 값이 내려가야 정상이지만 상당수 업체는 수입가격 인상이나 원자재값 상승 등을 이유로 값을 그대로 두거나 오히려 올리기도 한다. 분유에 대한 부가가치세가 사라진 2009년 1월 시장점유율 1위업체인 남양분유는 제품 고급화를 명목으로 분유 값을 오히려 9∼13% 인상해 빈축을 샀다. 매일유업도 그해 9월 분유 값을 최고 12.2% 올렸다. 올 들어서도 2월 남양유업, 일동후디스 등이 제품 값을 7∼8% 인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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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제품의 관세를 한시적으로 면제해 주는 할당관세 역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정부는 최대 36%인 치즈, 버터 관세를 0%로 내렸지만 시중가는 요지부동이다. 이마트에 따르면 호주산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가격(200g·5920원)은 할당관세가 적용된 지난해 이후 한 차례도 값을 내리지 않았고, 미국산 스프레더블 가공버터(425g·6990원)도 가격 인하가 없다가 올 들어서야 110원 내렸다. 지난해부터 관세 10%가 면세되는 냉동고등어(1kg)의 경우 2010년 12월 3800원에서 이듬해 1월 3440원으로 반짝 내렸다가 7월 3740원으로 올라 현재까지 해당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수입업체들은 “할당관세는 적용 물량이 한정돼 있어 대부분 특판 행사용으로 소진된다”고 밝히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세금혜택을 통해 물가안정을 꾀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은 실패한 셈이 됐다.

한미,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됐지만 주요 공산품에서 가격인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것 역시 이런 맥락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감세를 하더라도 업체들이 제품가격을 내렸는지를 일일이 감시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유류세 인하 압력에도 정부가 망설이는 이유도 결국 세금이 내려간 만큼 정유업체들이 값을 올릴 수 있다는 우려가 한몫하고 있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정부가 관세나 부가세를 낮춰도 소비자 가격이 그대로이다 보니 정부의 신뢰도가 낮아지고 근거 없는 FTA 반대 주장 등이 힘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기업#유통#세금#FTA#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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