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 재벌 지배구조 때문”

  • Array
  • 입력 2012년 2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英 이코노미스트誌 보도

한국 증시가 저평가를 받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원인은 북한 리스크가 아니라 한국 대기업 집단의 후진적인 지배구조 탓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1일 발간한 최신호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소수 의견’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최근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동네상권 침해 등이 논란이 되면서 정치권의 ‘재벌 때리기’가 거센 가운데 외국 경제전문 매체가 삼성, 현대자동차, SK그룹의 사례를 직접 언급하며 한국 재벌을 비판하고 나서 눈길을 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올해 한국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 전망치는 10배를 밑돌아 아시아 10개국 중 중국 다음으로 가장 낮았다. PER는 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PER가 낮으면 이익에 비해 주가가 낮아 저평가됐다는 뜻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경제가 북한의 위협 때문에 실적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주장이 많지만 이런 해석은 설득력이 떨어졌다. 작년 12월 김정일 사망 이후에도 한국 증시와 원화 환율은 빠른 속도로 제자리를 찾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선업처럼 경기민감 산업의 수출 의존도가 높고 기업 부채비율이 높은 점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되지만 이보다는 한국 경제를 지배하는 재벌의 기업 지배구조가 가장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오너 일가 중심으로 경영되는 한국 재벌이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나 상속세 탈루, 일감 몰아주기 같은 ‘비도덕적’ 지배구조를 통해 주주이익을 훼손하고 더 나아가 증시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분석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어 “최근 ‘터널링(tunnelling)’과 ‘프로핑(propping)’ 같은 관행이 한국 사회에서도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며 “이런 관행과 코리아 디스카운트 간에 뚜렷한 관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터널링은 기업 오너가 자식 이름으로 자회사를 세워 일감을 몰아주는 편법 증여의 일종으로, 대기업은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고 재벌 2, 3세는 손쉽게 부를 축적할 수 있다. 프로핑은 자회사를 동원해 부실 계열사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잡지는 “두 방식 모두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준다”며 “기업 내부자가 이처럼 자금을 멋대로 쓰면 투자자들은 기업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게 되고 주식도 낮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풀이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관행과 관련해 그룹 총수들이 유죄 판결을 받고서도 사면 받은 사례를 상세히 소개하며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한국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부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금 탈루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건희 삼성 회장은 2009년 사면을 받고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위원으로 활동했으며 2003년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의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된 최태원 회장도 사면을 받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가 중 한 명으로 뽑혔다고 잡지는 꼬집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장남 정의선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글로비스에 1조3000억 원 규모의 사업물량을 몰아줬다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당한 사례도 터널링의 대표 사례로 소개됐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