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FTA-피시플레이션’ 겹치면 한국어업 초토화

  • Array
  • 입력 2012년 2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양식 규모 27배, 수산물 총생산량 17배, 어선 수 13배…. 수산 분야의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은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수협중앙회 관계자)

정부가 24일 공청회 개최를 시작으로 한중 FTA 협상 개시를 위한 공식 절차를 시작한다고 밝히자 국내 수산업계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생산 및 인력규모, 가격 경쟁력, 양식 기술 등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는 중국에 문을 열어주면 국내 수산업은 속절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세계 수산물 가격 급등을 뜻하는 ‘피시플레이션(피시+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하면 국내 수산식량 안보에 빨간불이 켜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 압도적인 중국 수산 경쟁력

‘이 양식장 한 곳에만 직원이 5000명에 이른다. 양식장 내에 민관학이 연계한 첨단 연구센터도 있다. 양식시설과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보유하고 있는 국제인증과 특허도 여러 건이다.’(수산경제연구원의 중국 양식현장 견학보고서 중)

수산 전문가들은 중국과의 FTA는 지금까지 한국이 체결한 모든 FTA를 합친 것보다 국내 수산업계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은 전 세계 수산물의 35%를 생산하는 나라다. 특히 양식어류는 세계 생산량의 65%를 차지한다. 탄탄한 기초과학에 바탕을 둔 뛰어난 양식기술 덕이다. 수협 관계자는 “국내에서 생산할 수 없는 치어(稚魚)를 중국에서 수입할 정도로 중국은 우리보다 양식 기술력이 훨씬 우월하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한중 두 나라가 같은 바다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산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양국은 잡아들이는 어종이 거의 같고 거리도 가까워 언제든 중국의 활어가 국내에 들어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싼 인건비 덕에 중국산 어류는 가격 경쟁력이 높은데 한중 FTA로 관세까지 철폐되면 국내 어업계는 초토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도 중국 어선들이 우리 영해를 자기 바다처럼 활보하는 판에 판로까지 확장되면 불법 조업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걱정했다.

중국의 연간 수산물 생산량은 5100만 t(2009년 기준)으로 우리나라(300만 t·2011년)의 17배에 이른다. 2009년 기준 어선 수도 104만2400척으로 한국(7만7700척)의 13배가 넘는다. 국내 수산업계는 한중 FTA에 따른 국내 수산업계의 피해액이 연간 7800억∼1조2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 자생력 잃은 국내 어업계

이에 맞설 국내 어업계의 현실은 초라하다. 어촌에 사람도 없다. 2010년 기준 우리나라 어가인구는 17만1191명으로 2005년 대비 22.6%가 줄어들었다. 어민 중 65세 이상 비율도 23.1%에 이르러 고령화도 심각하다.

수협 관계자는 “‘외국인 선원이 없으면 수산업을 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라며 “원양어선은 70%가 외국인 선원일 정도”라고 전했다. 최근 어업계는 현재 9500명인 외국인 선원 쿼터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4000명을 더 늘려 달라고 정부에 요청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수입 수산물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1998년 국내 수산물 소비에서 외국산은 31.4%에 그쳤지만 2010년에는 64.3%로 뛰어올랐다.

통상 분야의 한 전문가는 “한중 FTA가 체결되고 피시플레이션까지 겹치면 기름이나 곡물처럼 해외 가격에 국내 수산물 물가가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앞으로 10년간 세계 수산물 평균가격이 이전 10년보다 35% 상승할 것이라며 피시플레이션을 경고한 바 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