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m내 같은 체인점 5개… “본사는 대박, 가맹점은 피박”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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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상권 침해 논란 속 ‘우후죽순 프랜차이즈’의 현실

《 2010년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을 낸 조모 씨(37)는 꿈에 부풀었다. 계약 상담을 할 때 본사는 “매달 4500만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것은 문제없다”고 했다. 가맹비와 원재료값 등 각종 비용을 제해도 순이익이 20%는 된다니 수익이 매달 900만 원은 나는 셈이었다. 100m²(약 30평) 남짓한 공간은 그에겐 희망이었다. 점포 보증금 1억 원을 비롯해 가맹본사에 내야 하는 가맹비, 인테리어비 등에 들어가는 돈 2억3000만 원과 각종 세금 등을 합치면 3억 원이 넘게 필요했다. 그동안 회사 다니며 번 돈과 은행에서 대출받은 2억 원을 더해 ‘다걸기(올인)’에 나섰다. 꿈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게 문을 연 지 다섯 달 정도 됐을 때 직선거리로 500m도 안 되는 곳에 규모가 다섯 배나 큰 같은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들어섰다. 새로 문을 연 점포가 24시간 영업을 하면서 학생 할인까지 내세워 손님을 빼앗아 가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
매출이 뚝뚝 떨어졌다. 4000만 원은 꿈도 못 꿨다. 점포 임차료 600만 원에 관리비와 인건비 900만 원, 재료비 750만 원 등 고정비는 매달 2500만 원가량 들어가는데 매출은 3000만 원이 채 안 나왔다. 이자에 감가상각까지 감안하면 남는 게 거의 없는 셈이다. 정 씨는 “지금은 500m 남짓한 거리에 같은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3개나 되는데 다른 브랜드 커피전문점도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것을 고려하면 앞으로의 상황은 더 나쁠 것”이라며 “쏟아 부은 초기 투자비 때문에 발을 빼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 프랜차이즈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


최근 대기업들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줄줄이 제빵 사업에서 손을 떼고 있지만 제과점을 비롯해 커피전문점과 편의점, 치킨집 등의 가맹점 시장은 포화상태가 된 지 오래다.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슈퍼와 빵집이 들어섰던 골목상권을 대대적으로 습격해 밀어내면서 상권을 장악해 가고 있다. 특히 가맹점주들은 ‘동네 상권을 다 죽인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수익이 별로 나지 않아 ‘빛 좋은 개살구’ 처지다.

[채널A 영상] 본사는 웃고 가맹점주는 울고… 커피전문점 ‘빅5’ 횡포 파헤친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주택가인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지하철 2호선 문래역 주변 500m 지역에 있는 제빵 치킨 커피 편의점 등 4종의 프랜차이즈 점포를 헤아려 본 결과 무려 45개가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자전거로 2분이면 도착하는 이 거리에서 대형 프랜차이즈 본점이 쓸어간 창업비용은 건물 임대료를 빼고도 약 61억 원이나 됐다. 서울 서초구 남부터미널 인근 400m 근방에도 커피전문점 ‘카페베네’만 5개가 몰려 있다. 다른 프랜차이즈까지 감안하면 건물 한두 개 사이로 커피전문점이 있을 정도다. 문래동에서 치킨 프랜차이즈 점포를 운영하는 이모 씨(51)는 “같은 상권 안에 치킨집만 12개인데 본사에선 개별 점포 마케팅은 신경 쓰지 않아 자비를 들여 전단을 뿌리고 이벤트를 해야 한다”며 “생존 자체가 힘겨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루 평균 2000장 정도의 전단을 뿌리는 데 드는 돈은 약 12만 원. 전단 배포 인건비까지 합치면 한 달에 250만 원 정도가 들어간다.

○ 프랜차이즈 본사는 땅 짚고 헤엄치기


사진은 해당기사와 특정 관련 없음. 동아일보DB
사진은 해당기사와 특정 관련 없음. 동아일보DB
영세 자영업자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가맹점주들은 대형 프랜차이즈 본사만 돈을 벌고 있다고 목청을 높인다. 가맹점주 간 경쟁을 발판으로 “앉아서 돈을 쓸어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가맹본부가 원자재를 독점으로 공급하는 데다 1000만 원 안팎의 가맹비 및 그외 각종 인테리어 비용을 챙기며 수익을 늘리고 있다. 개별 점포가 망해도 출점만 늘리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가맹점주 보호에는 관심이 없다.

점주들은 폐점률을 공개해 예비 창업자들이 실상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하거나 상권 보호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등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정 구역 내에선 같은 프랜차이즈 점포의 추가 확장을 법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임영균 광운대 경영학과 교수는 “영업권 보호 문제는 가맹본부와 가맹점의 사적(私的) 계약인 만큼 해외에서도 법적 규제를 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프랜차이즈 역사가 100년이 넘는 미국처럼 같은 상권에 신규 점포를 내줄 경우 약정을 통해 일정 금액을 자율적으로 보상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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