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들 이상한 경매… 자기가 입찰하고 자기가 낙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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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가 4억 임야 7억 매입 등 1년새 118건 자기낙찰
전문가들 “이해 힘든 거래”… 부실 대출 숨기기 의혹

지난해 7월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경매1계에서 경남 거제시 하청면 유계리에 있는 임야 1700여 평에 대한 경매가 시작됐다. 채권자는 삼일상호저축은행이고, 감정가는 4억4093만 원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채권자이자 경매를 요청했던 삼일상호저축은행이 단독 응찰해 7억8000만 원에 임야를 되사들인 것. 인근 중개업소에서는 “관광휴양개발진흥구로 묶여 있는 덕에 감정가가 그나마 높게 나온 편”이라며 “연결도로가 없는 맹지(盲地)라 실제 가치는 감정가를 크게 밑도는 땅”이라고 말했다.

저축은행들이 담보 회수를 위해서 경매에 채권자로 참여한 뒤에 그 물건을 자기가 낙찰 받아버리는 ‘자기낙찰’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자기낙찰을 할 때 감정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낙찰을 받는 등 통상적인 경매 투자행태와 다른 ‘이상한 행보’를 보이는 사례가 적지 않아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저축은행들의 이상한 자기낙찰


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초부터 1월 말까지 저축은행의 자기낙찰 사례는 모두 118건에 이른다. 같은 기간 국민 신한 등 일반 시중은행의 자기낙찰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이들의 자기낙찰은 통상 감정가보다 싸게 낙찰 받는 일반적인 경매방식과 크게 달랐다. 신라상호저축은행은 지난해 6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경매에서 감정가 23억 원짜리 서울 도곡동의 주상복합아파트를 23억 원에 낙찰 받았다. 신라는 이 아파트의 주 채권자 가운데 하나였다. 부림상호저축은행도 올해 1월 자신이 채권자였던 경기 안양시 만안구에 있는 감정가 1억2000만원 짜리 상가를 이 금액에 낙찰 받아갔다

지난해 3월 인천지방법원 경매에 나온 감정가 4억6828만 원의 공장도 마찬가지다. 채권자인 금화상호저축은행은 감정가보다 조금 더 보탠 4억6830만 원에 사들였다. 지난해 10월 한국상호저축은행은 자신들이 후순위 채권자로 있던 감정가 18억 원짜리 송파구 아파트가 1회 유찰돼 최저가가 14억4000만 원으로 떨어지자 18억 원으로 올려 써 낙찰 받았다.

○ 부실대출 등 문제 있을 개연성


전문가들도 자기낙찰과 고가 낙찰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시중은행 여신관리 담당자는 “외환위기 이전에는 시중은행들도 자기낙찰을 받는 경우가 있었지만 요즘은 비업무용 자산 보유에 따른 수익성 악화 우려 등으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감정가보다 높은 가격에 낙찰 받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거래’란 것이 경매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지옥션 남승표 선임연구원은 “경매란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낙찰 받아 이익을 남기는 것이 핵심이다”라며 “낙찰을 감정가보다 높게 받는다든가 감정가와 비슷한 가격에 되사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저축은행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자기낙찰 이면에는 ‘묻지마 대출’ 등의 부실이 감춰져 있을 개연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안종식 금융감독원 저축은행감독국장은 “자기낙찰 자체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기 때문에 대출 시점의 세부 정황을 봐야 한다”며 “문제가 있으면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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