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출범 50주년… 선진국 문턱에 선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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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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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주력→고속 성장→민주화…
13일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출범 50주년

“금후(今後) 5개년 동안에 한국의 농촌 경제는 크게 바로잡힐 것이며 공업화의 터전을 닦아서 제2차, 제3차 5개년 계획에서 경제적 비약을 기대한다. 이제 우리 민족도 그 지표(指標)를 얻었으니 명시된 이정표를 쫓아 꾸준히 전진해야 한다.”

1962년 1월 13일 군사정부의 송요찬 내각수반 겸 외무부 장관은 이런 내용의 담화문을 통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출범을 공포했다.

그로부터 50년. 한국 경제는 고 박정희 대통령과 당시 경제 관료들이 꿈꿨던 것 이상의 비약적 발전을 이뤘다. 1인당 국민소득이 82달러(1961년)로 먹고사는 게 최대 목표였던 세계 최빈국에서 지난해 2만4000달러(약 2784만 원·추정치)의 선진국 문턱에 선 중진국으로 도약했다. 해외원조에 연명하던 나라가 지난해 세계 9번째로 무역 규모 1조 달러 국가 대열에 합류했다.

○ 군사정부가 수립한 1차 계획

1차 5개년 계획은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지시로 같은 해 7월 설립된 경제기획원(EPB)의 첫 작품이었다. 기치는 ‘지도받는 자본주의 체제’. 정부가 국가경제 전체를 이끌어가며 필요하다고 판단한 곳에 한정된 자원을 집중 배치하는 ‘개발독재’의 시작이었다.

“혁명정부의 지시를 받아 자유당 정권 시절 부흥부에서 만들어 놓고 못 쓴 ‘경제개발 3개년 계획’을 토대로 5, 6명이 달라붙어 밤새워 만들었죠. 당시 공산국가뿐 아니라 일본 등도 정부가 개발계획을 세워서 경제를 견인했습니다.” 기획원 서기관으로 당시 계획 수립에 참여했던 이경식 전 부총리 겸 기획원 장관(79)은 이렇게 회고했다.

1차 계획의 최우선 과제는 농업 국가였던 현실을 반영해 ‘농업생산성 증대에 의한 농가소득 증대’로 정해졌다. 또 전력·석탄 등 에너지 공급원 확보,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수출 증대를 주축으로 한 국제수지 개선, 기술 진흥 등도 과제로 설정됐다.

‘계획 기간 중 연간 7%씩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1차 계획의 내용을 놓고 경제학자들 사이에선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 고도성장 견인한 2∼7차 개발계획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경제의 재건과 자립적 성장을 이룩하려면 무엇보다 장기 경제개발계획의 수립이 요청된다”며 계획을 밀어붙였다. 1차 계획 5년간 경제는 평균 7.7% 성장해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자신감을 얻은 박정희 정부는 2차 계획(1967∼1971년)을 추진했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됐고 경부고속도로가 뚫렸으며, 포항제철(현 포스코)이 착공됐다. 5년간 경제는 평균 10.0%씩 성장했다.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수출 100억 달러’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3차 계획(1972∼76년) 기간에는 중화학 공업이 집중적으로 육성됐다. 1차 석유파동(1973년) 영향으로 지체됐지만 1000달러 국민소득과 수출 100억 달러 목표는 4차 계획(1977∼1981년) 첫해인 1977년에 달성됐다. 2차 석유파동(1978년)에도 불구하고 4차 계획 기간 중 한국 경제는 연평균 7.2% 성장했다.

전두환 정부 시절 시작한 5차 계획(1982∼86년)부터는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5차와 6차(1987∼1991년) 10년은 정치·사회적으로 암흑기였지만 경제는 연평균 10.0%씩 급성장했다. 노태우 정부 때 시작해 김영삼 정부 때 끝난 7차 계획(1992∼96년)의 마지막 해인 1996년 한국 경제는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 경제개발 계획의 명암

7차에 걸친 경제개발 계획을 통해 이룩한 고도성장은 괄목할 만하다. 1961년 82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7차 계획 마지막 해인 1996년 1만2518달러로 35년간 153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GDP도 21억 달러에서 5728억 달러로 273배로 성장했다. 계획 마지막 해인 1996년 이후 2010년까지 14년간 1인당 국민소득이 1.7배, GDP가 1.8배로 각각 늘어나는 데 그친 점을 고려하면 당시 경제발전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이해할 수 있다.

고도성장 시대의 교훈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려면 압축, 고도성장의 후유증인 양극화의 그늘을 해소하는 한편 미래세대의 자양분이 될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선택을 받지 못한 취약 부문에 대한 배려와 과감한 규제 완화를 통해 사회 갈등 해소와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경제학)는 “경제발전계획 시절 제조업 중심의 양적 성장에 치중하면서 국민의 삶의 질을 상당 부분 포기한 것이 사실”이라며 “서비스, 복지와 관련한 분야에서 일자리와 성장의 기회를 찾는 선순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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