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동지회 “아∼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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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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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지점장 출신이 은행장이 되는 시대가 안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씁쓸합니다.” 한때 국내 은행권을 쥐락펴락하던 일본 도쿄지점장들의 연말 송년회 모임인 ‘동지(동경지점장)’회에 참석한 한 전직 금융계 고위 인사가 전한 소회다. 동지회는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도쿄지점장을 지낸 전현직 은행권 임원들이 두 달에 한 번씩 만나는 모임으로 조준희 기업은행장,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 최영환 전 수출입은행 부행장 등이 주요 회원이다.

이들보다 조금 늦게 도쿄지점장을 지낸 김진관 전 SC제일은행 부행장, 외환은행 도쿄지점장 출신의 차순관 에이앤피파이낸셜 수석 부사장 및 한국IB금융 대표, 이신기 신한은행 부행장보, 백국종 우리은행 부행장 등은 조준희 기업은행장과 함께 ‘이목(매월 두 번째 주 목요일)’회를 결성해 모임을 갖고 있다. 두 모임의 참가자들은 도쿄와 금융계 선후배 사이라는 인연을 바탕으로 돈독한 유대를 자랑한다. 차순관 수석 부사장은 도쿄지점장을 마치고 외환은행으로 복귀했지만 임원이 되지 못하고 퇴직하자 김진관 전 부행장의 주선으로 에이앤피파이낸셜에 취직할 정도였다. 김 전 부행장이 일본 시절 국내 최대 대부업체인 에이앤피파이낸셜(상품명 러시앤캐시)의 최윤 대표와 쌓은 막역한 교분이 작용했다.

도쿄지점장 출신들의 모임이 활발하고 관계가 끈끈한 이유는 과거 도쿄지점장이 은행원 최고의 출세 코스로 꼽혔기 때문이다. 해외근무 자체가 드물던 시절, 선진국인 일본에서 근무하면서 도쿄 거주 정부기관 및 기업체 임원들과 인맥을 쌓을 기회를 가지는 일은 큰 이점이었다. 실제로 도쿄지점장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면 더 좋은 자리가 이들을 기다릴 때도 많았다. 도쿄지점장을 마치고 1년 만에 지주회사 임원으로 승진한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이 대표적 예다. 지점장은 아니지만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도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한일은행 도쿄지점에서 근무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동지회나 이목회의 송년회 분위기는 항상 서로의 승진을 축하하는 등 화기애애하고 시끌벅적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8일 서울 마포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동지회 송년회 분위기는 이전과는 크게 달랐다. 이목회의 핵심 멤버인 김진관 전 부행장이 10월 말, 동지회 핵심 멤버인 최영환 전 부행장이 7월 퇴직한 데다 가장 먼저 행장이 됐지만 후계구도를 둘러싼 잡음으로 하차한 이백순 전 행장은 막대한 경비가 드는 재판 과정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았다는 것.

8일 동지회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제일은행이 피인수되지 않았더라면 김진관 전 부행장도 행장이 될 기회가 있었고, 신한 사태로 이백순 전 행장이 낙마할 거라고도 예상 못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과 회장 직을 놓고 경합했던 이철휘 전 캠코 사장도 비슷한 시기에 주일본 한국대사관 재경관을 지낸 인연으로 친하게 지냈다”며 “우리 모임에서 지주회사 회장 1명, 행장 3명을 배출할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니 안타깝다”고 했다. 다른 참석자는 “우리 때는 은행 내 최고 인재가 도쿄지점에 갔는데 글로벌 금융위기 후 해외지점의 위상 자체가 과거와 달라졌고 젊은 인재들은 미국 뉴욕이나 영국 런던 지점을 더 선호해 도쿄지점장 출신 행장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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