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국내 초고층빌딩 설계 외국기업 위법 확인… 국토부 “처벌 규정 애매… 건축사법 고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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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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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초고층빌딩 설계 외국기업 단독 수주 명백한 위법 확인

서울 용산 국제업무지구에 들어설 111층짜리 ‘트리플 원’을 비롯해 국내에서 추진 중인 초고층 빌딩의 주요 설계를 외국 업체들이 싹쓸이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현재처럼 외국 기업에 건축물 주요 설계를 모두 맡기는 것은 건축사법 위반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법 위반에 따른 처벌 규정이 애매해 제재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정부는 관련법을 개정하고 건축물 인허가권을 가진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행정처분을 내리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본보 11월 19일자 A1·3면 초고층 시공 세계1위 한국… ‘집안 설계’는…

16일 국토해양부 등에 따르면 건축사법 23조 3항은 ‘외국 건축회사는 국내 건축사와 공동으로 건축물 설계를 수임(受任)할 때만 사업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시행령(21조의 2)은 외국 건축사가 건축주와 계약할 때 국내 건축사와 공동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설계도면도 공동으로 서명하도록 했다. 시행규칙(12조의 2)에서는 외국 설계사가 국내 건축사협회에 영업신고도 해야 한다. 외국 설계회사가 단독으로 국내에서 설계를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국내 주요 초고층 빌딩을 설계한 외국 기업 가운데 이를 지킨 곳은 한 곳도 없다.

게다가 건축주들이 설계업체 선정 과정에서 외국 기업들만 참여할 수 있도록 ‘지명공모’ 방식을 주로 이용해 외국 기업들이 주요 설계를 독점하고 있다. 용산국제업무지구도 외국 건축회사에만 설계 입찰제안요청서를 보냈으며 전체 마스터플랜부터 주요 건축물의 기본설계를 외국 업체에 단독으로 맡겼다. 국내 설계업체는 외국 업체로부터 하청 받는 형태로 참여하거나 기본설계 이후 단계의 설계만 맡고 있다. 박재범 대한건축사협회 조사연구팀장은 “국내의 규모가 큰 건축물 설계는 대부분 이렇게 하고 있다”며 “법을 무시하는 행태가 관행으로 굳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법 위반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건축사법 39조에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처벌 조항이 있지만 처벌받을 위반 행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아 실제로 적용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처벌조항과 설계권에 대한 규정을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건축사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또 현재 외국 기업에 설계를 맡긴 국내 초고층 빌딩사업을 대상으로 법 위반 여부를 면밀히 점검하고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서울시 등 지자체를 통해 건축물 인허가를 제한하거나 계약서 재작성 등 시정명령을 내리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초고층 건축기술의 핵심인 설계 분야가 외국 기업의 독무대가 되고 있는 관행을 더는 두고 보지 않겠다는 게 정부의 의지”라며 “관행을 깰 방법을 전반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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