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건설 제3황금기… ‘사막의 형님’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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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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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은 쏟아지는데 전문인력 태부족

60대 명예퇴직 직원 수십명씩 재채용

해외건설 시장이 호황을 누리면서 일손이 달리자 대형 건설사들이 퇴직한 플랜트 전문가들을 다시 채용해 현장근무에 나서게 하고 있다. SK건설 김성운 부장, 대우건설 강종희 부장, 현대건설 임영한 부장(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은 모두 퇴직했다 복귀한 전문 엔지니어들이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현대건설 제공
해외건설 시장이 호황을 누리면서 일손이 달리자 대형 건설사들이 퇴직한 플랜트 전문가들을 다시 채용해 현장근무에 나서게 하고 있다. SK건설 김성운 부장, 대우건설 강종희 부장, 현대건설 임영한 부장(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은 모두 퇴직했다 복귀한 전문 엔지니어들이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현대건설 제공
걸프 만과 맞닿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쿠르사니야 지역. 이곳에는 걸프 만 유전에서 뽑은 천연가스를 정제하는 ‘카란 가스처리시설’의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현대건설이 2009년 2조500억 원에 수주한 대규모 프로젝트로, 150명의 한국 건설역군들이 거친 모래바람에 맞서며 현장을 지키고 있다.

이 가운데 올해 환갑을 맞은 임영한 현대건설 부장은 지난해 2월 카란 현장에 부임한 최고참 엔지니어다. 그는 공사 현장의 전기 관련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오전 4시 반에 일어나 오후 6시까지 일하는 게 일상. 격일로 오후 10시까지 야간근무도 한다. 임 부장은 “14년 가까이 해외 건설 현장에서 보낸 습관이 몸에 배서 힘든지 모르겠다”며 “발주처가 인근에서 비슷한 공사를 진행 중인 외국 건설사에 ‘현대건설만큼만 하라’고 얘기할 때면 뿌듯함을 느끼면서 피로가 절로 풀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만 환갑 전후의 또래 엔지니어가 5명 있다”며 “형편이 닿는 한 계속해서 해외 건설 현장을 지키고 싶다”고 덧붙였다.

‘제3의 황금기’를 맞은 해외 건설 현장은 ‘노병은 죽지 않았다’는 말이 적용되는 곳이다. 명예퇴직이나 정년으로 회사를 떠났던 60대 인력이 속속 복귀하고 있다. 해외 건설 호황을 맞아 인력 부족에 허덕이는 건설사들이 퇴직한 직원들에게 눈을 돌리면서부터다. 특히 해외 플랜트가 황금기를 이끄는 ‘효자’로 자리 잡으면서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60대 플랜트 인력들은 ‘귀한 몸’이 됐다.

현대건설에는 퇴직했다가 계약직 등으로 재입사해 해외 건설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직원(임원 제외)이 160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60대가 13명이다.

SK건설도 퇴직한 뒤 다시 입사한 60대 플랜트 인력만 37명이나 된다. 플랜트 구매지원팀의 김성운 부장(61)도 그중 한 명. 1976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1989년 SK건설로 이직한 김 부장은 19년을 쿠웨이트, 사우디, 미국 등 해외 현장에서 구매담당자나 기계 엔지니어로 일했다. 하지만 2002년 말 정년을 2년 앞두고 명예퇴직으로 회사를 떠나야 했고 국내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쿠웨이트 현지 건설사에 몸담기도 했다.

당시는 국내 건설사들이 외환위기 이후 해외사업이 급감하면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섰던 시기. 현대건설 임 부장도 2002년 이란의 건설 현장에서 명예퇴직 소식을 들었다.

2005년 해외 건설 붐이 다시 불기 시작하면서 SK건설은 김 부장을 먼저 찾았다. 최주환 SK건설 플랜트인력팀장은 “퇴직한 직원은 수십 년간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 전문성이 있을뿐더러 후배를 양성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며 “해외 건설 호황이 이어지면서 퇴직자 채용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장은 이달 중순 사우디에 새로 마련되는 SK건설 구매지원 사무실로 옮겨가 현장 구매업무를 총괄할 예정이다. 그는 “명예퇴직하지 않고 남아 있었으면 임원이 됐을지 모르지만 건설 현장에서 10, 20년 근무할 수 있는 게 더 좋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 카타르의 수리조선소 건설 현장에서 정년을 맞은 대우건설의 강종희 부장(56)도 회사의 요청으로 계속해서 현장을 지키고 있다. 그는 플랜트 품질관리 중에서도 최고 난도로 꼽히는 원자력발전소 품질관리의 전문가로 통한다. 대우건설엔 이렇게 정년퇴직 후 계약직으로 남아 있는 플랜트 인력이 31명에 이른다. 카타르 현장에서 5년 만에 돌아온 강 부장은 내년 초 요르단 원전 건설 현장 파견을 앞두고 있다.

해외 건설 역사의 산증인인 이들은 제3 황금기를 맞은 해외건설을 두고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임 부장은 “중동시장에서 국내 건설사끼리 경쟁하면서 지나치게 낮은 금액으로 공사를 따내는 저가 수주가 많아 안타깝다”며 “이를 막을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부장은 “국내 사업이 쪼그라들어 이제는 해외에서 살아남는 건설사여야 국내에서도 도태되지 않을 것”이라며 “인도 중국 같은 후발주자의 경쟁력이 굉장히 높아진 만큼 국내 건설사도 단순 시공이나 토목, 건축 중심의 사업에서 벗어나 엔지니어링, 구매, 시공까지 아우르는 고부가가치 플랜트 사업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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