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둥거려야 혁신적 아이디어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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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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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의 문화인류학자 제네비브 벨 박사가 말하는 ‘지루함의 미학’

8년차 회사원 윤미희 씨(30)는 짬이 날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e메일이나 트위터를 체크하는 게 버릇이 됐다.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1, 2분마저도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데 쓴다. 버스나 전철을 기다릴 때에도 마찬가지다. 윤 씨는 “혼자 멀뚱히 서있는 게 어색해서 자꾸 스마트폰을 보던 게 버릇이 됐다”며 “덕분에 틈틈이 뉴스나 e메일을 체크할 수 있어 시간을 아껴 쓰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요즘 많은 사람이 윤 씨처럼 시간을 ‘생산적’으로 쓰기 위해 노력한다. 예전에는 직장에 있는 시간 외에는 인터넷에 연결돼 있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접속하고 수많은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더욱 생산적이 됐다고 느낀다. 진짜 그럴까.

“뇌는 정작 그렇게 느끼지 않아요.”

저명한 인류학자이자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 인텔의 사용자경험연구소장 제네비브 벨 박사는 “현대인들은 지루할 틈이 없어졌고, 그 대신 넘쳐나는 일로 과부하가 걸려 있다”고 말했다. 벨 박사는 1998년 인텔이 고용한 최초의 사회과학자다. 정보기술(IT) 기기를 쓰는 소비자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필요한 기술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일을 맡고 있다.

벨 박사는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순간에 뇌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한다”며 “결국 지루함은 한없이 매력적인 주제이며 우리 인간에게 이로운 것”이라고 말했다.

○ “지루할 때 혁신이 나온다”

벨 박사는 2008년 워싱턴대에서 나온 ‘지루한 뇌’에 대한 논문을 예로 들었다. 연구를 진행한 이 대학 마크 민턴 방사선학과 교수는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루해할 때의 뇌 사진을 찍었다. 그 결과 뇌가 ‘현재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고 느낄 때, 열심히 정보를 처리하고 있을 때보다 에너지 소비량이 5%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뇌가 에너지를 적게 쓰면서 창의적인 생각에 이르게 한다는 얘기다.

벨 박사는 “언제나 인터넷에 ‘연결된’ 세상이 된다는 건 우리가 즐겁게 시간을 보낼 일이 많아진다는 얘기”라며 “그 말은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멀뚱히 빈둥대던 시간들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벨 박사가 말하는 지루함이란 멍하게 인터넷을 클릭하고 있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온전히 하는 일 없이 뇌가 쉬는 시간이다. 샤워를 하거나, 잔디에 물을 주거나, 운전을 할 때에도 그렇다. 유독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느끼는 시간들이다. 벨 박사는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이미 100여 년 전에 ‘지루함을 잠재우려고 하기보다 지루함을 깨어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IT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카 씨도 저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디지털 기기에 생각하는 능력을 ‘아웃소싱’하면서 뇌가 창의적인 생각을 찾아내기보다 정보를 처리하는 데에 급급하게 된다”고 썼다.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만 쓰다 보면 뇌의 해당 영역만 비대해진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일부는 본능적으로 디지털 기기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기도 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일부러 만들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얘기다. 벨 박사는 “최근 연구에서 일부 사람이 지속적인 디지털 세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인터넷 접속이 불가능한 장소를 찾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 IT와 인문학의 만남

벨 박사가 인텔에서 인류의 삶과 IT 혁명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처럼 최근 IT업계에서는 인문학과 기술을 접목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벨 박사는 “인텔의 팀에는 공학자, 소프트웨어 전문가, 하드웨어 전문가뿐 아니라 디자이너, 인류학자, 심리학자, 과학소설 작가까지 함께 일하고 있다”며 “이러한 다양성에서 소비자가 필요한 기술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도 늘 인문학과 기술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마이크로소프트, IBM, HP 등도 인류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삼성그룹도 사장단 회의에서 인문학자들을 초청해 다양한 강연을 들으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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