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자동화의 끝은 어디?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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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는 법을 잊어버리는 중입니다.”

지난달 말 미국 연방항공청(FAA) 자문위원인 베테랑 파일럿 로리 카이가 이런 말을 토로해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비행기 제작 기술이 너무 발전해 대부분의 조종을 컴퓨터가 자동으로 하다 보니 파일럿들이 조종법을 잊어버린다는 것이었죠. 특히 자동운항 중인 항공기에 컴퓨터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 당황한 파일럿이 수동 조종에 실패해 벌어지는 사고가 최근 5년 동안 급증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태어난 뒤 성장하면서 끊임없이 노력해가며 기술을 숙련합니다. 단순히 할 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냥의 기술이 숙달되지 않으면 맹수 앞에서 두려워 창을 겨눌 수 없게 마련이고, 농사의 기술이 숙달되지 않으면 모를 제대로 심지 못해 수십 마지기의 논에 벼가 둥둥 뜨게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지금 우리는 숙달의 중요성이 점점 사라지는 사회를 살아갑니다. 우린 더는 주산학원과 암산학원을 다니면서 주판알을 튕기는 법을 배우지 않습니다. 대신 컴퓨터로 더 정확한 계산을 더 빨리 해내죠. 이는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금융 사고를 훨씬 더 줄여줍니다.

항공기의 자동운항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파일럿은 더는 두 눈을 부릅뜬 채 10시간이 넘는 대륙간 비행을 직접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장거리 비행이 쉬워졌고, 사람이 실수로 저질렀을지 모르는 사고도 많이 줄어들었죠. 하지만 한편으로 숙달을 잊어버린 사람들은 자동운항 시스템이 오류에 빠졌을 때 이를 능숙하게 해결하는 능력도 함께 퇴화됐습니다.

사람 대신 판단하는 자동운항 시스템, 사람 대신 전화번호를 기억하는 휴대전화, 우리의 지식을 대체하는 인터넷 검색…. 기계에 대한 인류의 의존은 점점 커져갑니다. 사실 비행기를 조종하는 건 어느새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그저 컴퓨터의 실수를 막기 위해 조종실에 앉아 있는 것이죠. 전화 통화에서도 사람들은 기계의 작동 원리는 전혀 모른 채 그저 필요한 전화번호를 호출하기 위한 ‘이름 입력도구’일 뿐입니다. 인터넷은 어떤가요. 개인보다 훨씬 뛰어난 거대한 지성 앞에 지혜를 갈구하는 작은 존재가 우리들 아니던가요. 이처럼 우리는 점점 덜 현명해집니다. 그 결과 중 하나가 바로 ‘나는 법을 모르는 파일럿’이 일으키는 항공 사고였겠죠.

이런 현상에 대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페루의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최근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의 기고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성은 점점 로봇처럼 자동화된 인공지능 형태로 전락하고 있다. 인류는 핵전쟁이나 대형 테러로 엄청난 피해가 발생해 동굴 생활로 돌아간 뒤에야 ‘이런 식으로 발전하는 게 아니었다’고 뉘우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기계에 판단을 맡기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에 미래가 있겠느냐는 묵시록적 예언이었죠. 결말은 비극일까요, 희극일까요. 답은 우리 스스로에게 있습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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