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살생부 발표 앞둔 저축銀… ‘예금>인출’ 기현상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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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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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모 씨(42)는 이달 초 서울 강북의 한 저축은행 지점에서 창구 직원과 상담한 뒤 4000만 원짜리 정기예금에 들기로 했다. 이 저축은행의 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는 연 5.7%로 시중은행보다 2%포인트나 높다. 최 씨는 “큰 저축은행인데 설마 무너지겠느냐”며 “이자를 0.1%포인트 더 얹어주는 인터넷뱅킹 예금에 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영업정지 대상 저축은행 발표를 앞둔 상황에서 저축은행들이 무리한 고금리 예금 유치경쟁을 하면서 수신 규모가 과도하게 커지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저축은행 중심으로 예금 인출이 확대되고 있는데도, 지표상으로는 수신이 더 늘면서 저축은행 사태의 심각성이 매몰되고 있는 셈이다.

동아일보 경제부는 추석 연휴 직전인 9일 오후 서울 양천구의 한 저축은행을 찾았다. 2차 저축은행 구조조정이 임박했다는 소식으로 고객은 별로 없었지만 ‘유망 고객’을 겨냥한 저축은행의 맞춤형 마케팅은 훨씬 정교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저축은행은 고객의 여유자금을 약식 조사한 뒤 예금을 소개하고 예금자보호제도로 고객을 안심시키는 3단계 절차를 거쳤다. 창구 직원은 고객이 정기예금을 소개해달라고 하자 “1년 만기에 5.7%이고 13개월 복리로 따지면 6%가 넘는다”며 상품 팸플릿들을 꺼내 보였다. 저축은행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을 의식한 듯 “우리 상황이 좀 어려워 자본을 늘리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면서도 “어차피 5000만 원 이하 예금을 들 거고, 나라에서 다 보장해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다독였다. 서울 명동의 한 저축은행 직원은 “9월 말에 구조조정 대상이 발표되고 나면 저축은행들이 이자율을 떨어뜨릴 것”이라며 “그때 가서 가입하면 지금보다 금리 면에서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가입을 독려했다.

이런 저축은행들은 예금이 빠져나가는 조짐이 있을 때 예금 인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연 5% 중후반대 고금리 예금을 내놨다. 금융당국이 인출액에서 신규 수신액을 뺀 ‘예금 순유출’ 규모가 총 수신의 1%를 넘으면 바로 보고하도록 했고, 순유출이 너무 많으면 영업이 일부 정지될 수 있다고 경고했기 때문에 수신에 총력전을 편 것이다.

저축은행 사태 이후 예금자보호제도의 한도인 5000만 원 이하로 예금을 쪼개서 맡기는 안전장치를 두는 예금자가 부쩍 늘었다. 하지만 ‘내가 거래하는 곳만은 안전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5000만 원이 넘는 예금에 드는 고객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적 지명도가 있는 저축은행에 특히 이런 뭉칫돈이 몰리는 경향이 있다. 9일 한 저축은행 수신 담당자는 본보 기자에게 “우리는 결코 구조조정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이 저축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당국이 제시한 기준치에 못 미쳐 구조조정 대상 후보군에 올라 있다.

고금리를 내세운 수신 확대는 저축은행과 고객, 정부 모두에게 독이 될 수 있다. 저축은행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제한된 상황에서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처가 없어 이자 지급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고객들은 자신이 거래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 처분을 받으면 5000만 원 초과 예금을 당장 찾을 수 없다. 5000만 원 이하 예금이라도 해당 저축은행이 청산되면 약정이자보다 크게 낮은 시중은행 정기예금 평균이자를 받는다. 예금보험공사는 무리하게 유치한 부실 저축은행 예금을 대신 갚아주는 과정에서 예보 기금에 손실을 입을 수 있다. 금융지주회사의 한 관계자는 “지금 저축은행에 5000만 원 초과 예금을 드는 것은 기름을 지고 화약고로 뛰어드는 격”이라고 말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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